고객 개인정보 유출 관련 카드 3사의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사죄했다. 왼쪽부터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들에 그치지 않았다. 롯데카드는 박 사장을 포함 경영진 9명이 사의를 표명했으며 KB금융은 아예 카드사 경영진은 물론 지주사와 은행 경영진까지 모두 한꺼번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건호 KB국민은행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영록 회장만 빼고 전부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엄중 문책’을 강조한 터라 버틸 재간이 없었던 듯하다”며 “KB금융의 경우 비단 이번 사건 때문이 아니라 도쿄지점 사건 등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계속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례적인 경영진 총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NH농협금융의 경우 별도법인이 아닌 분사 형태여서 분사장 아래 임원이 없다. 따로 경영진이라고 할 만한 조직이 없는 것. 손경익 분사장의 사퇴로 시작된 금융권의 ‘줄사퇴’ 행렬이 현재로서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 나아가 현오석 경제부총리까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책임자 처벌 강하게 하겠다”, “CEO(최고경영자)가 도의적 책임이라도 꼭 지게 하겠다”, “금융사 CEO 전·현직 안 가리고 엄중한 책임”, “책임 소재를 명백히 가려 최고 한도의 강력한 제재를 취하겠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금융사 CEO에 대한 강한 처벌을 시사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문제가 된 카드사 3곳에 대해 일정 기간 신규 카드 모집을 금지하는 영업정지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고 발생 당시를 기준으로 해당 카드사의 전·현 CEO에 문책 이상 중징계를 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임원의 경우 문책경고는 3년간, 직무정지는 4년간, 해임권고는 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불가능하다.
소공동 롯데백화점 카드발급센터에는 카드 재발급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태 발생 초기 “수습이 우선”이라며 야당의 사퇴 압박을 가로막았던 여당 내에서도 점차 금융당국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사태 수습을 하는 것도 추후 사퇴하는 식으로 총체적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하에 해야 한다”며 현오석 경제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감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금융권의 대폭적인 인사 물갈이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만 1년을 맞이해 그동안 능력 면에서 의심을 받아왔던 경제부처 인사들을 이참에 갈아치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귀국하기 직전 “박 대통령 귀국이 두렵다”는 말로 그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당국이 이럴진대 하물며 개별 금융사들은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사태 수습만으로도 정신없는 터에 앞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하며 “어떤 지시가 내려올지,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임영록 KB금융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금융회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영위되는 기업이며 신뢰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하며 “고객과 시장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그룹이 되자”고 주문했다.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 역시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에게 “금융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고객 신뢰를 쌓아가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농협금융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NH농협금융의 경우 지난해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NH농협금융은 임 회장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금융 사고를 방지하지도 못했고 신뢰를 쌓지도 못했다.
NH농협금융 관계자는 “지금은 카드 관련 사태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도 “우리투자증권 실사를 진행하는 등 인수 문제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사표 수리가 어느 선까지 될지, 인사·조직개편이 어떻게 될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사태 수습이 우선이고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KB금융은 말할 것도 없고 출범한 지 이제 2년 된 NH농협금융의 인사 개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NH농협금융은 분사 형태여서 대규모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손 전 분사장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박 사장을 포함해 경영진 9명이 사의를 표명한 롯데카드 역시 인사 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에 대한 인사 조치와 함께 금융당국 수장을 포함, 금융권 고위 인사들이 과연 교체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