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임준선·구윤성 기자
그러나 법원은 고령인 조 회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영장을 기각했다. 2000억 원대 배임·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수감된 이재현 CJ그룹 회장과는 대조적이다. 검찰도 영장 재청구를 포기하고 지난 9일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심지어 오는 5월 첫 공판을 앞두고 있는 조 회장은 지난 21일 일시적으로 출국금지를 풀고 암 정밀진단 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조 회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1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기영)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7년, 벌금 300억 원과 비교하면 형량이 훨씬 낮아졌다. 이런 분위기 덕에 재벌가에서는 설 연휴 직후 잇따라 열리는 총수들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2월 6일 서울고법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가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26일 1·2심과 동일하게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전 선고들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다. 김 회장이 시세보다 싼 값에 팔아 한화석유화학에 손해를 끼쳤다고 검찰이 주장한 전남 여수시 소호동 소재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이 이전과 다르게 나왔기 때문. 평가액이 실제 판매가에 근접한다면 이 부분의 배임 혐의는 벗을 수 있다. 또한 김 회장 측이 지난해 12월 범죄액수 피해회복을 위해 465억 원을 추가로 공탁한 점도 감형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승연 회장에 대한 선고가 있는 그 날,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도 열린다. 그는 2000억 원 상당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 9월 1심 당시 구 회장 측은 구 회장이 여든에 가까운 고령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월 14일엔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앞서 검찰은 지난 14일 이 회장에 대해 징역 6년에 벌금 1100억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 회장이 지목돼있는 세금 탈루, 국내외 법인 자산 개인용도 활용, 일본 도쿄 소재 빌딩 매입으로 인한 CJ 일본법인의 손실 등의 혐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대법원 선고도 2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10월 회사 돈 497억 원을 빼돌리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그룹 임원들의 성과급을 부풀려 비자금 139억 원 상당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1월 31일 법정 구속된 이후 12개월째 수감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최 회장은 감형되지 않고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기업들은 겉으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회장의 선고를 앞둔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들도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일단 법원의 선고를 지켜보자 입장”이라며 “회사 내부에서도 직원들 사이에 말을 아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법에 정해진 양형이 있기에 총수들에게 집행유예 선고가 힘들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선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야 한다. 300억 원 이상 횡령·배임의 양형 기본은 5~8년”이라며 “지난해 징역형을 받은 총수들은 대부분 이러한 기준을 적용받았다. 그런데 비슷한 혐의로 오는 2월 앞둔 판결은 집행유예가 나온다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법원은 그동안 재벌들의 범죄에 대해 느슨한 판결을 해왔다. 지난해에만 이례적으로 총수들에게 징역형을 내리는 등 강경했던 것”이라며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재벌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면, 총수들은 경영상 위법 행위 관습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