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부실 복원 의혹을 조사하던 한 대학 교수의 갑작스런 사망을 놓고 외압설 등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비슷한 시각 충북대 또 다른 건물에서는 유난히 적막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학교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풍경. 이윽고 오후 3시 15분쯤 박 아무개 교수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박 교수가 소속된 학과 학생들은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였다.
“전혀 낌새도 없으셨어요.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시곤 했었는데….”
이날 박 교수는 학과 목재 표본실에서 목재 등 재료를 쌓아놓는 선반에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처음 발견한 이는 그의 부인 서 아무개 씨(56)와 학과 학생 김 아무개 씨(여·29). 부인 서 씨는 남편과 아침에 점심 약속을 했다가 점심시간 이후에도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학교를 직접 찾았다가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충격에 휩싸인 서 씨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사망한 박 교수는 충북대 목재·종이과학과 교수로, 목재 나이테 분석 분야에선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가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숭례문 부실 조사를 맡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박 교수가 맡은 분야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값싼 러시아산 소나무가 사용됐다는 의혹에 대한 검증 조사 부분이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에 박 교수가 사망한 원인에 대해 갖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박 교수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너무 힘들다. 먼저 가 미안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목을 맨 정황, 수첩에 적힌 문구를 고려했을 때 타살보다는 자살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변수도 조사를 해봐야 했다. 경찰은 CCTV를 찾기 시작했다.
CCTV는 다행히도 복도에 위치해 있었다. 박 교수가 머문 표본실에 누군가가 드나들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찾은 셈이다. CCTV 화면을 돌려보니 박 교수가 오후 1시 무렵 표본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누군가가 표본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지만 자세히 확인해 보니 부인 서 씨와 학생 김 씨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고 시신이 확인된 시각인 오후 3시 무렵까지 아무도 표본실에 드나든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 교수의 모습에서 누군가의 침입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선 경찰 조사 결과 박 교수의 몸에서는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표본실은 2층에 위치해 있기에 창문을 통해 누군가가 침입하기도 수월하지 않은 높이였다. 하지만 박 교수의 모습에서 특이한 점은 한 가지 포착됐다. 바로 멀티탭 전깃줄로 목을 맨 사실이 확인된 것. 멀티탭은 실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기에 박 교수가 ‘홧김’에 목을 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즉 미리 도구를 준비하는 등 자살을 사전에 마음먹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 경찰 관계자는 “박 교수가 멀티탭 전깃줄을 밖에서 가져왔는지 표본실에 있던 것을 사용했는지 파악하긴 어려웠다. 중요한 건 아무도 왔다간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결국 외부 침입 소행이 없었다는 점과 CCTV와 유서의 내용 등 갖가지 정황을 종합해 경찰은 박 교수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또 다시 갖가지 의혹들이 떠오르기 시작됐다. 타살의 가능성은 낮을지라도 과연 어떤 요인이 박 교수를 죽음으로 몰고 갔느냐는 것이다. 또 단 이틀 만에 내려진 ‘초스피드’ 수사에 여러 의문점들이 증폭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일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과 관련해 경찰이 신응수 대목장의 목재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인터뷰 후 박 교수가 심적 괴로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점이다. 아내 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인터뷰를 한 뒤 걱정을 많이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인터뷰를 한 지 이틀 만에 박 교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결국 인터뷰 후 가해진 어떤 ‘외압’이 괴로움을 준 것 아니었겠느냐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외압 중 하나로 숭례문 복원을 맡았던 시공업체가 “검증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박 교수가 속한 종합점검단을 고소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공업체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된 사실이 없다. 박 교수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숭례문 조사와 관련, 경찰의 의뢰를 받았던 박 교수가 경찰 측으로부터 일종의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숭례문을 수사하는데 ‘자문’을 받기 위해 박 교수를 두 번 정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한 사실 밖에 없다”며 압박 의혹을 부인했다.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박 교수의 ‘휴대폰 통화내역’이다. 박 교수의 휴대폰은 사망 당시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경찰은 박 교수가 그동안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누구와 통화했는지 그 정도는 알지만 통화내용은 수사에 들어가지 않아 모른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경찰이 확인한 통화내역이 현재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JTBC 인터뷰 후 또 다른 기자와 통화한 사실만 확인해 줄 수 있다. 그 외에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취재기자 외에 또 다른 ‘제3자’의 전화가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셈이다. “혹시 숭례문 복원 관계자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만약 전화를 건 ‘제3자’가 숭례문 복원 관계자로 확인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대중에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학자에게 외압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 후 박 교수는 자택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JTBC’, ‘신응수 대목장’ 등을 다수 검색한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여론의 향방과 인터뷰로 인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관계자들을 체크한 셈이다. 이 상황에서 외압이 가해졌을 경우 박 교수가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박 교수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아직 수사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이 수사 의뢰는 안 했지만 자살 동기 등과 관련해 여전히 수사는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수사가 완결되어야 자세한 것을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박 교수 사망사건의 또 다른 진실이 향후 밝혀질 수 있을까.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