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로 버려진 도시 체르노빌, 아직까지도 방사능 수치가 높아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그런데 이런 버려진 도시로 비밀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그리고 만약 아직 체르노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런 상상들이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시작점이다.
그 동안 기괴한 모습의 물고기 등 방사능 오염으로 괴물처럼 변한 돌연변이 동식물의 모습은 자주 매스컴에 소개된 바 있다. 그렇다면 만약 사람이 그처럼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그런 돌연변이 인간의 모습을 좀비와 비슷하게 그려냈다. 햇볕에 약해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으며 인간을 공격한다. 겉모습 역시 인간이 아닌 좀비처럼 변화했다. 어찌 보면 <체르노빌 다이어리>는 좀비 영화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존 좀비 영화와는 설득력 자체가 다르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들이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보다는 방사능 오염이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전사고로 버려진 도시 체르노빌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터라 현실감이 훨씬 높아졌다. 정말 버려진 도시 페르노빌에는 저런 존재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이것이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최대 장점이다.
영화는 매우 경쾌하게 시작된다. 크리스와 나탈리, 아만다 일행은 유럽을 여행 중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들이 유럽을 여행하며 촬영한 동영상으로 시작되는 데 젊은이들의 유럽 배낭여행이라 매우 경쾌하다.
미국을 떠나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의 형 폴은 우크라이나에서 이들 일행을 만나 인근 지역 관광을 도와준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출입이 통제된 지역인 체르노빌을 둘러보는 익스트림 관광이다.
물론 어려움이 크다. 이제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체르노빌은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 그리고 버려진 도시인 터라 사람은 없지만 사람을 위협할 만한 동물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체르노빌 관광을 전문적으로 하는 가이드 유리는 별 문제 없다고 설명한다. 우선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며 일정 수치 이상 방사능이 측정되는 곳은 다가가지 않는다. 또한 한나절 동안 짧게 진행되는 관광인 만큼 인체에 문제가 될 만큼 방사능에 노출될 일도 없다는 게 유리의 설명이다. 게다가 유리는 이미 여러 차례 체르노빌을 다녀온 터라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한다.
그렇게 조금은 꺼림칙하지만 이들 일행은 가이드 유리와 함께 체르노빌에서의 익스트림 관광일 시작한다. 또한 마이클과 바이킹 커플이 이 여행에 합류한다. 가이드 유리와 크리스 일행 4명, 그리고 마이클과 바이킹까지 모두 7명이 체르노빌 지역의 프리피야트(Prypiat)를 찾는다.
프리피야트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다. 그렇지만 지난 86년 4월 26일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오염지역에 포함돼 20년 넘게 버려져 있는 도시다.
여행은 즐거웠다. 음산한 프리피야트를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텅 빈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진정한 익스트림 여행을 즐긴다. 텅 빈 건물 안을 구경하다가 기괴한 소리에 놀라지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괴물이 아닌 거대한 곰이었다. 이런 에피소드 역시 아찔하지만 여행의 추억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여행이 끝났다면.
여기까지가 초반 30분가량의 내용이다. 여행을 소재로 한 경쾌한 청춘물 영화다. 체르노빌의 프리피야트가 여행지라는 점이 특이하지만 영화는 젊은 세 커플이 여행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30분이 지나면서 영화는 점차 공포영화로 변해간다. 해가 지기 전에 프리피야트 지역을 벗어나야 하는 데 차의 시동이 걸리지를 않는다. 차량이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차에 고장이 생기자 일행은 당황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텅 빈 도시인 줄 알았던 체르노빌 프리피야트를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후 영화는 대부분의 좀비 영화와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결말 부분이 다소 충격적이긴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작된 초반부에 비해 중반부 이후는 일반적인 좀비 영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부분은 다소 아쉽다. 이로 인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네티즌들도 많다.
그렇지만 러닝타임이 86분으로 짧아 영화의 전개가 빠르고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연출력도 돋보인다. 만약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100분 이상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겠지만 빠른 전개로 영화를 늘어트리지 않고 편집한 부분이 큰 장점이다.
국내에서는 오는 2월 13일 개봉 예정이다.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좀비 영화를 놓아한다면 추천한다. 그것도 뭔가 색다른 좀비 영화를 원한다면 강추다.
2. 여행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체르노빌이라는 인간의 접근이 통제된 지역을 비밀리에 여행하는 콘셉트의 영화인 터라 다른 여행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3.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물론 체르노빌 지역의 프리피야트에서 실제로 촬영한 영화는 아니지만 최대한 현지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말까?
1. 좀비 영화를 싫어한다면 당연히 비추다. 방사능 오염의 폐해를 다룬 영화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제는 좀비 영화에 가깝다.
2. 좀비 영화치고는 그리 재밌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좀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색다른 재미가 있지만 좀비 같은 방사능 돌연변이가 등장한 이후는 조금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3. 답답한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비추다. 방사능 돌연변이의 실제가 명확히 나오는 장면이 드물고 계속 주인공 일행이 공포 속에 도망 다니는 모습이 주로 등장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