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애국시민후보’로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월 23일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그는 민선 1기 서울시장 조순 캠프 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에 입문한 뒤 서울시 홍보담당관, 의전비서관 등을 지냈다.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으로 규정해 유명세를 탔다.
특이한 점은 정미홍 대표는 현재 새누리당 소속임에도 ‘애국시민후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정식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미홍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추대에는 어버이연합,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 구국채널, 북한인권기독교연합, 자유청년연합 등 35곳이 넘는 보수단체가 동참했다.
기자회견장은 줄곧 새누리당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정 대표는 “지금 새누리당 행보는 저를 실망시켰다 못해 반 좌절시키는 상황”이라며 “새누리당 당원으로 있지만 경선에 나갈 것인지, 독자 후보로 남을 것인지 여러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미홍 후보 추대를 위해 단상에 오른 한 탈북인 사역 목사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무사안일하고 후안무치한 작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며 “지금 새누리당은 가치나 이념이 없는 연예기획사나 광고·홍보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미홍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새누리당을 향해 쓴소리를 날린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날 기자회견에서 눈에 띈 인물은 최근 ‘밥값 디시 논란’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였다. 정미홍 후보 선거를 돕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변 대표는 “사표가 아직 수리되기 전이기에 지지발언은 할 수 없다”면서도 “지금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사실 그분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외부인사 영입)으로 이겨봐야 당선되고 나면 우리 애국진영에 전화 한 통 없을 거다. 지지율이나 당선가능성을 따지지 말고 제대로 해 보자”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 보수단체들과 보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지더라도 새누리당이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예 일부 의원들은 ‘새누리당 내 기회주의자’로 거론되며 축출 대상에 오르기도 한다. 최근 가장 공분을 산 이는 황우여 대표다. 최근 황 대표가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최 사장이 자신의 측근을 당협위원장으로 앉힐 것을 부탁했다는 의혹에 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로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정미홍 대표 출마를 조력한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비단 황 대표 문제만이 아니다. 친박계 맏형이라는 김무성 의원은 철도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상의도 않고 야당과 합의해 본인만 이득을 차렸다. 1년 내내 개헌을 외치는 이재오 의원이나 황우여 대표와 함께 국회선진화법 폐지를 막고 있는 남경필 의원, 이런 사람들이 당에 있는 한 이 정권은 성공하지 못한다”라고 펄쩍 뛰었다.
자신을 ‘애국청년’으로 소개한 한 대학생은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이긴 것은 야당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종북세력에 대해 애국진영이 끊임없이 경고하고 싸웠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에는 종북세력이 문제라면 새누리당은 웰빙세력이 문제”라고 전했다. ‘웰빙세력’이란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내 기회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짐작된다.
보수단체들은 여야가 합의한 국정원 개혁 문제에 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구국채널 한 관계자는 “지난 연말 새누리당이 무슨 짓을 했나. 국정원을 야당에 팔아 넘겼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는 위기 상황, 통일 대한민국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집권여당이 제 살자고 국정원 손발을 잘랐다”고 일갈했다.
정작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보수단체들의 성원과 달리 정미홍 대표 출마 기자회견장은 한산했다. 참석한 지지자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정미홍 대표는 당선을 목표로 출마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선거를 앞두고 나름대로 지분을 얻어내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의 출마가 결국 박원순 시장 재선가도를 겨냥한 ‘퍼포먼스’라는 해석도 내 놓는다. 새누리당 후보가 아닌 보수 성향 후보가 박 시장에 관해 맹공을 펼치면 여권은 수혜를 입는 동시에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선거에 이기기 위해 연대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임으로써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간 야권연대를 비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야권연대”라며 “이때 보수단체에서 새누리당과 연대하지 않는 어떤 후보를 내세우면서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여지를 만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보수단체와 새누리당을 별개로 보는 것은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