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자 경선에 김황식 전 총리, 정몽준 의원, 이혜훈 최고위원(왼쪽부터)이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박심’을 업은 깜짝 인물이 참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보고서를 직접 읽은 한 초선 의원은 “힘들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짐작했는데 이 정도 결과일 줄은 몰랐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간 연대가 제대로 성사되면 더욱 처참한 스코어였다”면서 “수도권에선 일부 지역을 빼곤 대부분 힘든 싸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여당 강세 지역인 대구나 부산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점쳤다”고 귀띔했다.
특히 여권 안팎에선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이른바 ‘수도권 빅3(서울·경기·인천)’를 모두 내줄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세 곳 중 경기도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내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민선 전환 이후 새누리당이 빅3에서 전패한 것은 지난 1998년 2회 지방선거를 빼곤 단 한 번도 없었다.
경기도의 경우 현역인 김문수 지사가 일찌감치 3선 도전을 포기했고,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남경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후보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인천 역시 민주당 송영길 시장의 아성을 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은 더욱 심각하다. 연초만 하더라도 박원순 시장을 누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퍼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언감생심이라며 한숨을 쉰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연대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박 시장 지지율이 공고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신당이 후보를 내 3자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새누리당이 박 시장을 이기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 분열은 필패라는 대명제가 이번엔 깨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발표한 조사들에 따르면 박 시장은 신당 후보가 포함된 3자대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를 4~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부정적인 전망이 연이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새누리당은 밥그릇 싸움에 한창인 모습이다. 공천을 둘러싼 친박과 친이계 간 힘겨루기가 대표적이다. 5월 임기가 끝나는 황우여 대표 후임자를 뽑게 될 전당대회의 시기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권대우 정치컨설턴트는 “전당대회를 언제 개최할 것이냐를 두고 각 계파가 다투고 있다. 저마다 정치적 속셈이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전당대회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새누리당도 믿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고초려 끝에 김황식 전 총리 영입에 사실상 성공했고, 장고를 거듭했던 정몽준 의원 역시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한 상태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간절히 원했던 김 전 총리와 정 의원 간 ‘빅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이 무척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친박계이자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출마선언으로 스타트를 끊으며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새누리당은 경선이 흥행하고 야권이 분열한다면 역전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조윤선 장관(왼쪽)과 홍정욱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또한 청와대는 새누리당 내에서 ‘박심’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속내도 내비치고 있다. 앞서의 정무 관계자는 “몇몇 후보자들이 박 대통령을 거론하는 것 같다. 선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여권 핵심부는 민주당과 신당 간 단일화를 전제로 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선 김 전 총리와 정 의원 외에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차출 또는 영입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구상하는 전략의 핵심이다. 김 전 총리와 정 의원이 맞붙는 그림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과연 둘이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란다. 누가 나오더라도 박 시장을 넘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 정권 인사인 김 전 총리, 비박계 정 의원, 친박계 이혜훈 최고위원이 펼치는 레이스가 흥행이 되긴 할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세 차례의 서울시장 지방선거에서 이명박(3회)·오세훈(4, 5회) 전 시장을 내세워 모두 승리했다. 서울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긴 하지만 인물론을 앞세우면 새누리당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였다. 이는 김 전 총리와 정 의원이 과연 박 시장을 이길 만한 자질과 대중성을 갖췄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 멘토그룹에 속해 있는 한 원로 인사는 “김 전 총리나 정 의원이 참신한 인물인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면서 “당장의 지지율에 현혹되면 안 된다. 설령 지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천을 통해 명분만 확보한다면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땐 차라리 이혜훈 최고위원이 나머지 둘보다는 박 시장과 겨룰 적임자”라고 말했다.
현재 여권 핵심부 주변에선 홍정욱 전 의원과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둘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지만 본인들이 고사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바 있다. 그런데 지방선거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재차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친박계의 한 중진급 인사가 홍 전 의원을 은밀히 만나 출마 제안을 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 장관 역시 여전히 차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김 전 총리나 정 의원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도 최선의 카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땅한 후보감이 없는 상황인지라 그동안 둘의 몸값이 올라갔던 것”이라며 “여권 핵심부가 냉정하게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계산해본다면 진짜 박심을 등에 업은 깜짝 인물이 부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