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청와대는 주저했다. 책임지고 결단을 내릴 철학이나 조직이 없는 것 같다. 간첩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는 해안선의 경비상황과 군의 야전교범과 지도들 그리고 탈북자들의 활동실태를 파악해 북에 보고했다. 간첩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증거가 북에 있는데 수사당국이 어떻게 입증을 할 것이냐고 비웃었다. 간첩인 그는 자기가 넘긴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뭔가 중요한 북의 상황을 많이 알고 있었다.
조사에 변호사로서 입회했었다. 조사실은 예전과 달리 지하가 아닌 지상이었다. 수사관들은 간첩인 그가 하는 거짓말만 열심히 받아 적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 자체가 놀랍게 변화된 사법 민주화이기도 했다.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변호를 거절했다. 정부의 허락을 받고 북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건 다른 방법이든 그들은 나의 생활을 꿰뚫고 있었다.
국민들이나 당국이나 과거의 트라우마에 잡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첩사건 하면 공안정국이 떠오르고 지하밀실에서의 고문을 떠올린다. 정권의 원죄다. 나도 그 피해자를 직접 보았었다. 지하밀실에서 얻어맞으면서 그들이 불러주는 사항을 쓰고 또 쓰니까 나중에는 그게 진짜 한 것 같더라는 호소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 대공수사관에게 직접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는 “간첩은 만드는 거지 잡는 게 아니다”면서 “우리는 위에서 물라면 무는 개”라고 자학적인 표현을 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그 분이 개로 죽을까봐 걱정이 됐었다.
세월이 흘렀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치밀한 안전망이 구성되어야 한다.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한 증거 위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만큼 수사체계가 허술한 것이다. 받아 적기만 하고 건네주는 자료만 안이하게 첨부했다가 문제가 터졌는지도 모른다.
강력계 형사한테 들은 말이 있다. 범죄현장에 용의자의 머리털 하나만 몰래 가져다 놓고 감정서를 만들면 판사와 검사가 꼼짝을 못한다고 했다. 이미 그게 현실이다. 수사체계의 무능함이 이제야 불거졌는지도 모른다.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 보다 전문적인 간첩에 대한 수사 역량이 필요하다.
북한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국기업이 비밀을 빼가고 이 나라 상공에서 첩보위성은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간첩수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전쟁이다. 그 과녁도 고정된 게 아니다. 그림자같이 모호하다. 허술한 수사는 그 그림자에 생명력을 부어주는 것이다. 어설픈 수사체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