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1500m 준결승에서 신다운이 넘어지면서 동료 이한빈과 충돌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노메달로 소치올림픽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빙상연맹은 왜 선발방식의 변화를 꾀했을까. 이유는 바로 파벌이 같은 선수들끼리의 ‘담합’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체대-비한체대’로 대표되는 파벌 싸움이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문제가 되자 아예 경쟁 구도를 지워버린 셈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국내대표 선발전에서 벌어졌던 ‘짬짜미’ 파문도 선발방식의 변화에 한 몫을 했다. 당시 이정수 선수와 곽윤기 선수는 코치의 지시 하에 금메달 나눠먹기를 시도했다는 파문이 불거져 자격정지 6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된 국가대표 선발방식이지만 여전히 비판은 만만치 않다. 쇼트트랙계를 끊임없이 뒤흔든 파벌 싸움에 대한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임시방편만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파벌 싸움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국가대표 선발방식 변화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성적만 떨어졌을 뿐 파벌 다툼의 중심이 됐던 윗선의 전횡은 그대로 남아 논란이 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윗선’은 이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 인물은 전명규 빙상협회 부회장이다. 그에게는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적인 지도자’라는 평과 ‘파벌 싸움의 원흉’이라는 평이 엇갈리는 중이다.
전 부회장이 이러한 평가를 얻게 된 계기는 ‘안현수 파동’에 의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지도 방식’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에이스의 메달을 위해 비 에이스들이 상대편 진로를 막아주는 ‘전명규식 작전’은 한국 쇼트트랙에 수많은 메달을 안겨주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파벌 싸움의 시초가 된 ‘양날의 칼’이었다.
이밖에도 전 부회장의 전횡에 대한 의혹은 독단적인 행정, 회전문 인사 등으로 여러 차례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불거진 성추문 코치 국가대표팀 발탁 파문 역시 전 부회장이 배후에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한 사람에 의해 행정이 좌우되고 문제 있는 코치가 임명되는데도 올림픽에서 성적이 나면 유야무야되는 게 빙상연맹의 현실”이라며 전 부회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쇼트트랙계의 문제점을 쇄신하기 위해선 막강한 권력에 의한 전횡을 막고 훈련 방식과 국가대표 선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선 쇼트트랙과 함께 대한민국의 간판 ‘효자종목’으로 꼽히는 양궁의 사례가 주목되고 있다.
양영술 한국 양궁 총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발전, 훈련 체계는 전국 일선 지도자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기획된다. 국가대표들의 훈련, 몸 상태도 매주 실업팀 감독들에게 세세히 전달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열리고 투명성도 확보된다”라고 전했다. 워낙 토론이 활발하고 경쟁이 공정하고 치열하다보니 권력으로 인한 전횡이나 ‘파벌’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쇼트트랙도 훈련 방식에 대한 대안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준호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는 “선발 방식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처럼 다시 바꿔야 한다. 2배수를 뽑아 그 중에서 8명의 선수를 선수촌에 입촌시켜 훈련하고 자체 선발전을 통해 5명의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쇼트트랙 실업팀 관계자는 “단 한 번의 선발전 평가보다는 평가 기간을 좀 더 길게 두고 인재풀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용철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운영위원은 “지금 국민 여론도 있고 빙상연맹 개혁의 시기로 딱 좋다. 비리와 파벌이 발붙일 수 없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