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를 겪던 송파구 세 모녀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유서와 현금 70만 원을 남기고 번개탄을 피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래는 다 타버린 번개탄 재로 뉴스 화면 캡처.
그 외에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었다. 가재도구도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들이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도 죽은 채로 발견됐다. 바닥에 놓인 접시에는 다 타고 난 번개탄 재가 있었다. 주인 임 아무개 씨는 “일주일째 집안에서 인기척 없이 TV 소리가 이어져 빈집에 불이 날까 봐 걱정돼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은 “밀폐되고 비좁은 공간에서는 번개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살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세 모녀의 유서가 보였다. 유서에는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현금 70만 원이 담긴 봉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특히 국민들이 세 모녀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자살을 결심했음에도 마지막까지 집세와 공과금을 두고 떠났다는 점이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없어도 구걸 없이 자존심 지키며 사신 것 같다. 이제 편안하게 쉬시라’ ‘가난해도 주변에 폐 끼치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듯해서 더 안타깝다’는 등의 댓글과 함께 ‘빈익빈 부익부의 희생자’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당한 인재’ ‘세금 거둬들여서 다 어디에 쓰느냐’는 등의 정부 복지정책을 질타하는 내용도 많았다.
세 모녀의 비극은 아버지 김 씨가 사망한 뒤 시작됐다. 김 씨는 12년 전 암 투병을 하다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은 사업 실패로 인한 상당한 빚과 투병생활로 인해 밀린 병원비뿐이었다. 가정은 어머니 박 씨 홀로 책임졌다. 그는 롯데월드 인근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동안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인 집에 9년째 살면서 월세와 전기 요금 12만 원, 건강보험료 4만 9000원가량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했다.
박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어서 정부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지만, 주변 친척들의 도움도 마다하고 스스로 가족을 부양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집주인이 월세를 50만 원으로 올려 박 씨는 고민이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빙판 길에 미끄러져 팔을 크게 다친 박 씨는 다니던 일도 그만둬야 했다. 그의 큰딸은 7년 전부터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변변한 치료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 큰딸이 혈당 수치를 기록한 수첩이 발견됐으나 병원 처방을 받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딸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여 박 씨에게 돈을 전달하긴 했으나 고정 수입은 아니었다. 둘째 딸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막다가 결국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악재가 겹치면서 세 모녀는 한 달가량 수입이 모두 끊기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세 모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송파경찰서 형사과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동반자살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어머니가 약물투여를 해서 딸들을 재우고 번개탄을 지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부검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정황상 동반자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파서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사건은 마무리 단계다.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하고 장례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친삼촌과 외삼촌 모두 연락이 닿았으나 친가 쪽은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은 관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외가 쪽에서 시신을 수습해 갔다. 그리고 자살 동기를 파악하려면 부검을 실시해야 하나 유족이 반대해서 그 이상 수사 진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최종적으로 사건은 사실상 동반자살로 마무리됐음을 밝혔다.
강기준 인턴기자 rockstars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