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교수는 중도민주 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사실 아직 1년이 지났을 뿐이기에 그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각종 언론을 통한 평가를 보면 공과가 뚜렷하게 나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외치는 잘했는데 내치는 미흡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다. 나는 시각이 다르다. 직선제 이후 외치를 잘못했다는 평가를 들은 대통령은 없다.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대통령도, 진보적인 대통령도 외치는 잘했다. 북한 문제에 있어 좀 더 전향적으로 접근하느냐, 원칙적으로 접근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지.”
―내치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가.
“해외순방 다니면서 잘못할 일이 뭐가 있나. 결국 내치인데 전문가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에서도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때와 지금 얼마나 대내외적 상황이 변했다고 당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나 복지, 국민대통합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나.”
―이번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보면 경제활성화가 전면에 나온 측면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해명이나 사과가 없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경질에 대한 사과 들어는 봤나. 사과라고 해야 청와대 수석회의나 국무회의에서 한마디 하는 것인데, 솔직히 더 기분 나쁘다. 공약을 통해 대통령이 됐다면 그걸 폐지하고 파기했을 때 진중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야당은 무시하더라고 국민을 무시하면 안 된다.”
―‘474(4% 경제성장률, 70% 고용률, 소득 4만 달러 토대 마련)’ 비전도 말이 많다.
“이명박 정부 747 공약에서 숫자만 바꾼 것인데 피부에 와 닿나. 창조경제도 뭘 창조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인 기초연금은 깎고 중산층 지갑이나 털려고 했던 건 알겠다. 지금은 느닷없이 공공개혁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거 하나만 제대로 해도 평가해주고 싶지만 어차피 못할 거다.”
―그 부분만은 의지가 강해 보이는데….
“공공개혁이라는 게 역대 정부에서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극단적 예로 지난해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을 때 국회에서 국정조사특위까지 발족하며 얼마나 시끄러웠나. 그것 하나도 난리인데 2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을 임기 내 개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공공개혁 한다면서 낙하산 인사 안 하면 다행이다.”
―비판 일색인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 2년차 지지율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2위다.
“내가 과거에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했다. 그때 경험으로 몇 가지를 들자면 우선 응답률이 너무 낮다. 요즘 여론조사는 집 전화와 휴대폰을 섞어 무작위로 표집하는데 휴대폰 응답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집 전화는 가정주부나 노인과 같이 보수적 성향이 많으니 지지율이 낮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응답률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
“박 대통령 지지율은 결국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과 중첩이 되는 것 같다. 50대 이상에서는 박 대통령이 좀 실수하더라도 넘어가는 분위기인데 이를 순수한 본인 지지율로 본다면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지난 1년간 야당이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게 결정적이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서울 상도동 YS 자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모습이다. 왼쪽이 김현철 교수.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지지율은 보통 10%포인트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이 50%대이니 새누리당은 40%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결코 새누리당이 잘해서 40%를 얻는 게 아니다. 또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해서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찍어주지는 않는다. 1995년 지방선거를 돌아보면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상회했지만 민자당은 참패했다.”
―집권여당이 안심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지방선거는 여당 무덤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이번 선거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박 정권 초창기만 해도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지지율을 합하면 새누리당을 넘었지만 지금은 둘을 합해도 새누리당을 못 따라잡는다.”
―지방선거에서 연대해도 소용없다?
“야당 연대가 지난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 했다. 제가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것이 연합이 아닌 융합이 필요하다, 1967년 대선을 앞두고 분열된 보수 야당세력을 모아 생긴 신민당이나 1990년 군정종식을 위한 삼당통합이라든지. 역사적으로 M&A(인수·합병) 방식으로 거대정당을 만드는 것이 큰 위력을 발휘해 왔다는 것이었다.”
―최근 민주당에서 김 교수를 경남도지사로 고려했다는 보도가 화제였다. 전말이 무엇인가.
“설 연휴 직전 민주당 경남도당 관계자들이 나를 찾아와 출마를 권유했다. 자체 여론조사를 했는데 내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었다. 명분은 상도동과 동교동의 재결합, 영호남 민주세력의 만남, 그리고 부산·경남 지역에서 YS의 영향력을 투영시키는 것이라며 이미 중앙당과도 상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역에 와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과 경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경선 참여가 부담이었나.
“무엇보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나설 생각 자체가 없었다. 내가 돕고 싶어도 지금 민주당으로 나서면 다 같이 수렁에 빠지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경선은 더군다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민주당 메커니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를 지역위원장과 경선을 붙인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나.”
―공연히 들러리가 될 게 뻔했다?
“그랬다.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정리됐는데 느닷없이 보도가 나갔다. 보도 이후 민주당에서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였다’, ‘중앙에서는 검토해 본 적 없다’는 식으로 반박하더라. 이틀 뒤 직접 SNS를 통해 지방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출마 생각도 없었던 사람을 불출마 선언하게 만들었다.”
―SNS 발언이 연일 화제다. 최근 김무성 의원을 향해 ‘쪽팔린다’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에 나가야 하고 이런 이해관계를 안다. 박 정권을 찬양하든지 그건 자기 마음이다. 그런데 5·16 쿠데타를 놓고 혁명이라니, 나는 처음에 잘못들은 줄 알았다. 친박계 골수가 이야기해도 가만두면 안 되는 것을 상도동 출신이, 상도동계라는 게 뭔가.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하며 민주화 투쟁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켜온 사람들 아닌가. 그 멤버가 5·16을 혁명이라고 하면 어떡하자는 말인가.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부정과 뭐가 다른가.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들으셨다면 역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중도민주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 패배한 양자가 만나 궁극적으로 단일한 정당을 만들어 합리적 중도민주세력을 이끌어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민주당은 친노 강경세력에 의해 끌려가고, 안철수 신당은 정체성을 모르겠다는 이런 상황은 안 된다. 1987년 탄생한 통일민주당을 생각해 보라. 합리적 중도와 보수층까지 아우르는 전국단위 정당이었다. 그런 정당을 만드는 데 역할이 있다면 그곳에서 초석을 쌓고 싶다.”
―현재 야권 분열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양자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패배자들에게 기득권이 어디 있나. 답답할 뿐이다. 지방선거는 이미 실기했다고 본다. 야권은 더 철저히 깨지고 부숴져야 한다. 기초선거 공천 문제만 봐도 여당이 아무런 사과나 반성 없이 지나가는데 이 같은 독선을 막지 못하는 절반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는 어느 쪽도 일장일단이 있다.
“과거 지방선거에서도 무공천으로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장·군수·구청장 등 행정가를 뽑는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 관점에서 무공천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민정부 때는 여당 쪽에서 무공천을 주장했는데 그때는 또 야당이 안 받아들였다. 야당이 무공천 관철 시 지방선거 보이콧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좋지 않은 평가를 해온 안철수 의원 측이 정당공천 폐지를 선언했다.
“안철수 의원이 정치 초년생이고 안 신당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 역시 베테랑이 아니다. 안 신당이 한국 정치의 역사적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말만 새정치고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이번에 기초단위 무공천도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이다. 어차피 안 신당은 기초단위에서는 나올 후보가 없어 대도시 광역단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지금 대도시에서 안 신당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 받았겠나.”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안 의원이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며 달래고 있다고 들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내가 안 의원 측에 정당을 만들어서 나와라, 정당 없이 대선에 나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했다. 울타리도 없이 무슨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단일 정당을 꾸리지 않고 독자노선을 선택했는데 공룡과 도마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지금 두 정당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어디로 가겠나.
“무슨 소리. 내가 SNS를 통해 중도민주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안철수에게 가는 것이냐’라고 하고, 현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를 지적하면 ‘민주당에 입당하라’고들 한다. 사소한 용어 하나로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정치란 결단의 연속이자 모험의 과정이다. 지금 시대정신은 집권여당을 견제할 하나의 수권정당을 만드는 일이다. 삼당통합이 군정종식을 위한 1기 통합이었다면 2기는 새로운 중도민주 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다. 이러한 방향의 정계개편은 새누리당 내 중도개혁세력 역시 동참할 것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