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992년 10월 21일, 미국의 서점가에 50달러짜리 사진집이 깔린다. 단순명료하면서도 섣불리 붙이기 힘든 <섹스>라는 이름의, 스프링 제본에 앞뒤 표지는 알루미늄 재질로 되어 있었고, 함부로 뜯어보지 못하도록 두꺼운 비닐 백에 담은 128페이지짜리 책은 5개의 언어로 동시에 발매되었고, 3일 만에 전 세계에서 150만 권이 팔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비주얼 북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 책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라, 1990년대 가장 강력한 컬처 스캔들이었으며, 마돈나라는 팝 싱어가 아이콘 이상의 아이콘이 된 계기이기도 했다.
마돈나는 누드집 [섹스]를 통해 아이콘 이상의 아이콘이 되었다.
처음엔 그냥 에로틱한 사진집을 낼 생각이었다. 같은 시기 발매된 마돈나의 5집 앨범 <에로티카>의 콘셉트에 보조를 맞추는, 일종의 프로모션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이었다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 주목을 받은 건 앨범보다 사진집 <섹스>였다. 1992년 초 뉴욕의 첼시 호텔과 타임 스퀘어의 어느 쇼 무대, 그리고 마이애미의 몇몇 장소와 그곳에 있는 마돈나의 집에서 촬영된 8만 장의 사진 중 극히 일부만 골라 만든 <섹스>는, 출간 전 필름 일부가 도난당해 FBI의 도움으로 되찾았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펑크록의 분위기부터 프랑스의 사진작가 기 부르댕의 초현실주의적 스타일까지 사진의 콘셉트는 다양했다. 잉그리드 버그먼의 딸이자 배우인 이사벨라 롯셀리니, 래퍼인 빅 대디와 바닐라 아이스(당시 마돈나의 연인), 모델인 나오미 캠벨, 게이 포르노 스타인 조이 스테파노, 배우인 우도 키어 등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특히 마이애미 촬영은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저택에서 마돈나는 3일 내내 벌거벗은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고, 급기야 누드로 길가에 나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섹스>는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었다. 마돈나는 무성영화 시절 독일의 여배우 디타 파를로에게서 영감을 얻어 ‘디타 부인’(Mistress Dita)이라는 이름으로 쓴 시와 짤막한 이야기와 에세이를 실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에서 당신이 보고 읽는 모든 것은 판타지이며 꿈이며 상상이다.”
<섹스>는 온화하면서도 하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폭력적인 톤의 사진으로 뒤엉킨, 마치 연약한 종이와 차가운 알루미늄 커버로 이뤄진 책처럼, 충돌하는 이미지들이 묶여 있는 화보집이었다. 어떤 사진은 매우 감성적이었지만, 몸을 묶거나 애널링구스(항문 애무)나 호모섹슈얼리티 같은 강렬한 이미지가 이어졌고 칼, 채찍, 마스크, 체인 등의 소품 등이 사용되었다.
[뉴스위크]에 실린 [섹스] 관련 기사.
흥미로운 건 남녀의 섹스 콘셉트는 마돈나와 바닐라 아이스의 사진이 유일했다는 점. 실제로 성기의 교합을 보여주진 않았다는 점에서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수 없었다. 여기에 ‘디타’라는 이름으로 빙의한 마돈나의 글이 흘렀다. “여성에게 성기는 배움의 사원이며, 성기를 드러내는 건 그곳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애널 섹스는 가장 쾌락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묶이는 건 어떤 편안함을 준다. 어릴 적 엄마에 의해 카시트에 묶이는 것 같은 것? 엄마는 아이가 안전하길 바란다. 그것은 사랑의 행위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길 두려워한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그러면서 마돈나는 자신이 포르노가 가짜 감정으로 섹스를 하기에 관심이 없다며 <감각의 제국> 같은 진짜 섹스를 다룬 영화가 울림을 준다고, 자신은 포르노가 여성을 비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플레이보이>에 실린 여성의 누드는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나오자마자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바티칸에선 “도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이콧을 종용했다. 인도에선 통관 장국에서 금지 품목으로 지정했고, 일본에선 판금 조치가 이뤄졌다. 미국 내에서도 난리였다. 외설죄로 출판사는 고소당했고, 침례교단에선 <섹스>를 찍어낸 곳에서 성서가 인쇄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굳이 프로모션 행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논란은 가속되었고, 마돈나는 인터뷰에서 “논쟁을 원한다면 예전에 찍었던 누드 사진도 기꺼이 공개하겠다”며, “나는 미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를 속박에서 풀려나도록 만들기 위해서” <섹스>를 만들었다고 강변했다.
[섹스] 중 마돈나의 히치하이킹 장면.
보수적 평단은 물론 팬들마저 마돈나가 너무 멀리 갔다고 비난했다. 안티-포르노 계열의 페미니스트들도 들끓었다. “자기 파괴적인 이상한 행동” “충격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만든 책” “혁신적이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책” “단지 마돈나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옷을 벗었을 뿐인 사진들” 등의 평가 속에서 마돈나는 더욱 나아갔다. <스네이크 아이>(1993) <육체의 증거>(1993) 같은 에로틱한 영화들이 이어졌고, 1994년엔 <데이비드레터맨쇼>에 나와 레터맨에게 자신의 팬티를 건네며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다. 1994년에 내놓은 6번째 앨범 <베드타임스토리>의 ‘Human Nature’에선 “내가 틀린 말을 했나? 이런, 난 내가 섹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걸 몰랐군. 내가 미쳤나 봐”라는 빈정거리는 가사를 넣었다. 그러면서 이른바 마돈나의 ‘섹스 시대’가 열렸고, 1980년대 섹시 아이콘이었던 그녀는 ‘성적 난폭자’ 혹은 ‘외설의 여왕’이 되었다. 그러면서 게이 커뮤니티에선 마치 커밍아웃이라도 한 듯 그녀를 숭배했고, 레즈비언 컬처는 <섹스>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좀 더 강한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베니티페어>의 평가처럼 “역사상 가장 더러운 커피 테이블 북”이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자 <섹스>는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인 제인 라파엘리는 마돈나의 책이 “섹스라는 행위의 해방”을 가져왔다고 평했고, 문화연구가 브라이언 맥네어는 “<섹스>를 통해 마돈나는 진정한 아이콘이 되었으며 비로소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책 <섹스>. 현재 우리가 마돈나에게서 느끼고 있는 강렬한 섹슈얼리티의 근원은 바로 이 책이며, 이후 지금까지 <섹스>를 능가하는 파워의 섹슈얼 이미지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