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초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에 한 통의 진정서가 접수됐다. 호남고속철도 광주차량기지 현장에 투입된 하청업체 A 사가 대림 측을 상대로 공사대금 미지급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정서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발주처인 공단으로부터 해당 공사를 수주한 뒤 일반건축공사를 T 건설에 하도급을 주었고, T 건설은 다시 A 사에 종합관리동 외 12개동 철근콘크리트공사를 하도급 줬다. T 건설과 A 사는 2012년 9월 7일 전문건설공제조합에서 계약보증서를 발급받아 양 사의 공사계약 건은 정상적으로 체결됐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대림은 T 건설 외에 검수고 공사 건에 대해서는 H 건설에 하도급을 줬고, H 건설은 다시 J 건설에 철근콘크리트공사를 맡겼다. 하지만 H J건설은 공사도중 경영부진으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고, 검수고 공사에 참여했던 수많은 근로자들의 임금이 체불되기에 이르렀다.
임금 체불이 장기화되자 근로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공사 현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대림 측은 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A 사를 통해 임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대림 측은 A 사의 법인통장으로 T 건설에서 돈을 송금할테니 이를 수령해서 대림산업에 주면 다음에 공사 끝나고 정산때 정산금으로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2012년 8월 경 T 건설은 2회에 걸쳐 2억8600만 원을 A 사 법인통장으로 송금했고, 대림 측 현장 직원은 A 사 법인통장과 통장인감을 총 7회에 걸쳐 2억 6300여 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이 돈은 A 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검수고에서 작업했던 H J 건설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됐다.
사진=대림산업 홈피 캡쳐
대림이 H J 건설 임금체불금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하청업체인 A 사 법인통장을 통해 임금 문제를 일단락 지은 셈이다.
문제는 A 사와의 정산 과정에서 상호간에 극명한 입장차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A 사 대표는 공사타절정산내역서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A 사가 지급받은 공사대금 8억6500만 원에 대림에서 H J건설 근로자에게 대체 지불한 2억 6000만 원을 포함시켰다는 것임.
A 사 대표는 “처음 공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갑’(대림산업)의 부당한 구두지시 또는 부탁을 외면하고 버티면서 공사를 계속할 수 있는 ‘을’(A 사)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있겠느냐”며 “우리는 호의로 법인통장을 빌려준 것 뿐인데 그(체불임금) 돈을 총 공사대금에 포함시켜 정산한 것은 그야말로 ‘갑의 횡포’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A 사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대림 측은 “A 사 또한 중간에 공사를 중단해 공사가 진행된 만큼만 공사대금을 지급한 것”이라며 “H J건설 근로자들의 체불임금을 A 사 법인통장을 통해 해결한 것은 다소 매끄럽지 못했지만 정산은 정상적으로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A 사의 진정서를 접수한 공단 측은 2월 1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공단이 현장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만큼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양 측의 입장이 다른 만큼 현장조사를 한 상태고 내일(19일) 공단 측 관계자와 대림, A 사 간 3자 대면을 통해 서로간의 입장을 들어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사 현장에서 불공정거래 및 불법이 드러날 경우 행정조치 등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공단 측 관계자와 감리단, 대림, A 사, T건설 등 이해관계자들은 19일 광주 공사현장에서 회합을 갖고 문제 해결책을 논의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합의점은 찾지 못한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