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은 ‘야권 통합’을 결심하기 직전까지 박경철 원장과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당시 안철수 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양보한다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박경철 원장과 포옹하는 모습. 일요신문 DB
통합 발표 직후 기자와 통화했던 안 의원 측근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당을 만드느냐”고 반문하며 “지난 2012년 대선 때 안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이후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 중 절반이 떠났는데, 아마 이번엔 그보다 더한 수가 이탈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당이 싫어서 안 의원에게 합류한 것인데 이제 어쩌란 말이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핵심 인사들도 안 의원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윤여준 창당준비위원회 의장은 “민주당과의 신당 합의를 뒤늦게 알려준 데 대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 의원이) 왜 일방적으로 정하나. 독단적인 의사 결정은 새 정치에도 어긋난다”며 안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성식 전 의원도 자신의 블로그에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발기인, 당원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안 의원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곽수종 팀장.
# 중요한 사안마다 예측불허 행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및 2012년 대선 후보직 양보. 2013년 4월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 2014년 민주당과의 통합 추진….’
안철수 의원이 여의도 정치권을 놀라게 했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안 의원 참모들 대부분이 말렸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 어느 누구도 안 의원 행보를 점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권대우 정치컨설턴트는 “우리가 정치인 행보를 예측할 땐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한다”면서 “그런데 안 의원은 그것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안 의원 공식 라인이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이 중대 발표를 할 때마다 정치권은 물론 내부가 술렁였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정치권에선 안 의원의 용인술을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선라인을 선호하고 폐쇄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 마치 박 대통령과 닮아있다는 게 그 이유다. 새정치를 주창해온 안 의원으로선 상당히 기분 나쁠 법한 평가지만 지금까지 모습만 놓고 봤을 땐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민주당과의 통합 추진 발표 직후 불거진 불통 논란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지적은 안 의원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든 지난 2012년 대선 캠프에서부터 끊이지 않았다. 안 의원 권유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캠프에서 공식적으로 정리된 사안인데도 안 의원이 전혀 다른 얘기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며 “안 의원이 중요한 사안은 비선라인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 때문에 불만을 가졌던 참모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안 의원의 ‘그림자 정치’ 논란은 민주당과의 통합 발표 이후 다시 불거졌다.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인 얘기들이 들린다. 그 중심에 바로 안 의원 평생지기로 통하는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있다. 박 원장은 안 의원이 김한길 대표 제안을 받고 결심하기 직전까지 의견을 주고받으며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곽수종 새정치연합 총무팀장이 통합 논의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진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학 박사 출신인 곽 팀장은 ‘박경철 복심’으로 통한다.
사실 박 원장은 대선 때도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박 원장을 중심으로 한 3~4명의 멘토들이 비밀리에 사무실을 차려 안 의원과 독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안 의원은 정치적 고비마다 이곳을 찾아 박 원장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원이 대선 후보에서 갑작스런 사퇴를 한 것이나, 대선 당일 미국으로 출국한 것 모두 박 원장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수차례 부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했던 안 의원 측 관계자들은 박 원장 존재에 대해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박 원장이 막후에서 안 의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특히 일부는 박 원장을 비롯한 멘토들을 ‘서초동팀’으로 불러 관심을 끌었다. 지난 대선 당시 박 원장이 꾸렸던 사무실 위치가 서초동이었기 때문이란다.
안 의원의 또 다른 참모는 “상징적으로 서초동팀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라며 “그들이 지금 어디서 활동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초동팀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통합 발표를 보고 확실히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 김한길 ‘역공작’ 통했나
이처럼 통합 과정은 불과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민주당 비노계 의원들 사이에선 예전부터 김 대표가 안 의원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 내 다수인 친노 세력과 맞서기 위해선 안 의원 영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민주당과의 정치적 연대는 없다”며 확고히 선을 그었다. 오히려 안 의원은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면서 민주당 대안 세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간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라는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안 의원의 신당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통합 가능성을 높였다. 비노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처음엔 아이디어 차원에서 (안 의원) 영입설이 나온 것이다. 진짜로 민주당과 통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안 의원이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본다”면서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한길 대표의 승부수가 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의원은 신당 창당을 앞두고 민주당 현역 의원들에게도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당 C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C 의원은 오히려 안 의원에게 민주당과의 통합을 제의했다고 한다. C 의원 측 관계자는 “2월 초 안 의원과 C 의원이 만났다”며 “당시 상황에서 신당에 합류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서 안 의원에게 차라리 신당과 민주당이 합쳐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적은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별다른 답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정치권 안팎에선 안 의원이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비노계의 ‘역공작’에 말렸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이 접촉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사전 각본에 따라 통합의 불을 지폈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될 기미가 보이자 김 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 카드를 꺼내며 제안을 했다는 얘기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67석)이 1992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해 군소정당이던 이른바 ‘꼬마민주당(8석)’과 통합했던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당시 김 전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민당 의원들은 시나리오를 미리 세운 뒤 이기택 민주당 총재를 은밀히 접촉하며 통합에 성공한 적이 있다”면서 “DJ를 통해 정계에 들어왔던 김 대표가 당시의 케이스를 염두에 두고 진작부터 통합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돌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