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유력 중진들이 다 빠지면 ‘알짜배기 친박’인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왼쪽),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등의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경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경환 원내대표가 근거 없이 개입해 대구시장 선거를 흔들고 있다. 최 원내대표가 최근 지역과 중앙 언론인을 잇달아 접촉하며 현재 거론되는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를 제외한 친박 핵심인사를 출마시키거나, 다른 출향인사를 전략공천하겠다고 은밀히 흘리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26일 대구MBC는 아침뉴스로 최 원내대표의 전략공천론을 보도했다. 최 원내대표가 지역 보도편집국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나온 대구시장 예비후보들이 중량감이 고만고만해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율을 보여준 지역민에 대한 예의상 지금보다는 한 단계 뛰어난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대구시장 전략공천론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친박 핵심인사, 한 단계 뛰어난 인물’이 누구냐는 데 있다. TK(대구경북) 지역 정치권은 모두 3선의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목한다. 현재 다섯 명의 예비후보가 대구시장 선거전에 나섰는데 전현직을 통틀어 3선급 의원은 없다. 그 지역의 정치권 관계자가 전한 말은 이렇다.
“포스트 박근혜를 두고 TK에선 유승민이냐, 최경환이냐를 이야기한다. 유승민 의원과 박 대통령과의 거리가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원조친박 그룹에선 유 의원이 전략기획실행 분야에서 앞선다. 구설이 없고 깨끗한 이미지인 데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희소가치도 있다. 반면 최경환 의원은 대통령과 아주 가깝지만 존재감에 있어선 밀린다. 최 의원로선 유 의원이 지방장관으로 물러나면 TK 맹주 자리를 꿰찰 수 있다. 유승민 대구시장 전략공천론을 두고 차출이 아닌 좌천, 남천(南遷)이라고 꼬집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는 5월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할 최경환 의원으로선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장에 나설 수 있고 당권 도전도 가능하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개각 요소가 발생하면 후보군 물망에 오를 수도 있다. 지방선거 다선 차출 드라이브가 계속된다면 최대 수혜자로 그가 꼽힐 수 있는 셈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최 원내대표 외에도 속으로 웃으며 표정관리 중인 인사들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홍문종 사무총장 등 친박계 중진 그룹을 꼽기도 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당내에는 알박(알짜배기 친박계)만 남는 것”이라고 빗댔다. 차출되는 이들 다선 중진들의 공통점을 눈여겨보라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수비수가 사라지는 윤상현 김재원 홍문종 의원으로선 공간 돌파가 너무 쉬워진다. 정몽준(서울시장), 남경필(경기지사), 원희룡(제주지사) 차출만 봐도 친박계로선 눈엣가시들만 줄줄이 차출돼 투입되는 것이다. ‘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이 당3역이라면 원내수석부대표, 사무부총장 등 당5역에서는 윤김홍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맡을 수도 있다. 결국 실무는 부대표, 부총장이 한다. 이들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진차출론의 또 다른 수혜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
개각 요인이 생긴 것을 두고도 침을 흘리는 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한 중진 의원은 차기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 발표가 있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인천시장 출마 선언으로 유정복 안행부 장관이 내각에서 빠지면서 개각은 필수불가결한 일이 됐다. 대폭일지 소폭일지 모르지만 개각 수요에 본인이 적임자라 생각하는 다선 의원이 많을 것이다. 나도 청와대로부터의 전화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일 유정복 전 장관의 빈자리는 강병규 전 행정안전부 제2차관이 내정되며 이 자리를 노리던 인사들은 김칫국만 마신 꼴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위태위태한 경제부총리 자리를 두고선 벌써 구체적으로 의원 이름이 회자하고 있다. 이주영 의원의 해양수산부 장관 발탁이 불러온 ‘나도 장관(할 수 있으려나)’ 현상이다.
원희룡 전 의원은 제주지사 출마로 정계복귀가 부드럽게 이뤄질 수 있다. 인천시장 차출론에 시달렸던 황우여 당 대표는 국회의장에 도전할 길이 열렸다. 머리가 큰 조직이 구조조정을 통해 숨통을 틔우듯 새누리당 내 권력구도가 지방선거를 통해 재편되는 모습이다.
물론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 태연해하는 인사들도 있다. 유정복 전 안행부 장관은 인천시장 출마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이 잘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고 답했다. 야권에서는 즉각 대통령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울고 싶은 이는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그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인천시장 출마를 준비해온 이학재 의원이다. 유 전 장관이 이 의원에게 ‘저리 비키시게’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꽤 오랜 기간 대구시장 출마를 준비했던 조원진 의원(재선)도 느닷없는 전략공천론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대구를 뺀 수도권, PK(부산경남)권까지 모두 3선 이상급 다선이 출전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앞서의 정치권 인사는 현 정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파도가 일고 있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의 진원지가 어디인가.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보다 높은 지금 여권이 지방선거에 패한다면 상황은 급변한다. 지방선거를 통해 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 원내대표 경선, 개각까지…. 새로 밑그림이 그려지는 판이 됐다. 누가 그리는 것인가.”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