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SBS
<짝> 여자 출연자 전 아무개 씨(29)가 자살한 뒤 가장 곤란해진 것은 단연 제작진과 SBS 방송국이다. 비난 여론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귀포 경찰서가 공개한 유서를 보면 고인은 제작진에 대한 원망 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유서 전문이다.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 그냥 그거 말곤 할 말이 없어요. 나 너무 힘들었어. 살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어요. 계속 눈물이 나. 버라이어티한 내 인생 여기서 끝내고 싶어. 정말 미안해요. 애정촌에 와 있는 동안 제작진들에게 많은 배려 받았어요. 그래서 고마워. 난 너무 힘들어. 단지 여기서 짝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삶이 의미가 없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미안해. 고마웠어.”
배려해준 제작진이 고맙다는 전 씨의 유서로 인해 곤란해진 것은 오히려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이다. <짝>은 애정촌에 입촌한 남녀 출연자들이 서로의 짝을 찾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때론 너무 리얼하기도 하다. 서로 마음에 드는 짝을 찾기 위해 경쟁하고,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려 안간힘을 쓰고, 자신 대신 다른 출연자를 선택한 이성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전 씨의 자살 시점이 다음 날 최종 선택만을 남겨둔 마지막 술자리였음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선 마음에 드는 남성 출연자가 다른 여성 출연자를 최종 선택할 분위기가 연출된 부분이 자살 동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실제로 전 씨와 짝이 될 뻔한 남성 출연자가 다른 여성 출연자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서귀포경찰서 역시 전 씨가 첫인상 선택에선 남성 출연자 3명의 지목을 받았지만 최종 선택을 앞두고는 남성 출연자들의 관심이 덜해졌으며 마음에 뒀던 남성에게도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불안감에 시달린 것 같다고 밝혔다.
#무리한 촬영 때문?
전 씨가 사망하기 전 지인과 주고받은 SNS 메시지. KBS 방송 화면 캡처.
“안한다고 했는데 작가 때문에 알았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 취소한다고 했더니 결제 다 받고 티케팅도 해놔서 취소 안 된다는 겨.”
“나 선택 못 받아도 이제 남자 1호 직진하겠다고 했어. 제작진이 내 눈물 기대한 거 같은데 씩씩해서 당황한 눈치.”
“같은 기수 출연자들도 내가 제일 타격 클 것 같다고 해. 지금 저녁 먹는데 둘이 밖에서 이벤트 한 거…녹음해서 다 같이 있는 데서 틀어놓는데 나 표정 관리 안 되고 카메라는 날 잡고. 진짜 짜증났오.”
“나 지금 촬영현장 빠져나와서 제작진 차타 고 병원 가는 중.”
“신경 많이 썼더니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아.”
고인의 지인들은 전 씨가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에게는 큰 불만이 없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제작진의 무리한 방송 촬영과 24시간 따라다니는 카메라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실제 고인이 친구들에게 남긴 메시지들에서도 전 씨가 힘겨워한 정황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 사이에선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너무 자극적인 상황까지 연출한 것이 고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입힌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출연동의서 등을 통해 제작진이 지나치게 출연자를 옭아매고 촬영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촬영 도중 병원에 다녀올 만큼 힘겨워하던 전 씨를 다시 촬영에 임하도록 하는 등 제작진이 출연자 안전 조치에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울증 등 개인사정 때문?
물론 이번 <짝> 촬영과는 무관한 다른 문제가 있었고 그 부분이 자살 동기였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짝> 제작진과 동료 출연자들은 어느 정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단순히 자살 장소만 애정촌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가족이나 지인들은 모두 전 씨가 평소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전 씨의 모친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애정촌에 간 뒤 선택을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정확한 고인의 자살 동기는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논란이 가열되면서 폐지론이 거듭 제기됐지만 SBS는 경찰 수사를 통해 정확한 사고 경위와 자살 동기가 밝혀지고 이에 따라 책임이 드러나면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고인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비난여론이 가열되자 결국 7일 오후 <짝> 폐지를 공식 결정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