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관련 혐의와 개인비리 등으로 구속된 이들 8명 의원들은 모두 한 평 남짓한 독거방에 수감돼 있다. 박재욱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7명 의원들은 서울구치소에 있지만 각각 별도 사동에 수감돼 있어 이들끼리 구치소 내에서 조우할 기회는 없었다는 것이 구치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치인 같은 거물급 인사들이 구치소에 수감될 때 곧잘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들이 읽는 책에 관한 것이다. 외로운 독방생활을 하면서 책읽기만큼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방법도 없기 때문에 수감된 정치인들은 평소보다 몇 배 이상 책 읽는 양을 늘린다고 한다.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이미 ‘옥중출마’를 선언한 박주천 의원은 면회 온 지인들에게 ‘원통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박 의원은 수감 첫날부터 성경책을 거의 품에 끼고 살았다.
그러나 신앙심만으로는 그 ‘화’를 다 풀 수 없었는지 최근 한 지인에게 부탁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란 제목의 책을 들여놨다고 한다. 고혈압 때문에 계속해서 약을 복용해왔다는 박 의원이 이 책을 통해 얼마나 ‘자기조절’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평소 호방한 성격의 박주선 의원은 측근들을 통해 중국 고전들을 넣어달라고 했다. <수호지> <삼국지> <손자병법> 등 주로 박 의원이 전부터 자주 읽었던 유명 고서들이다.
“검찰수사는 정치 탄압이다”면서 면회 온 지인들에게 “하늘이 나를 구속시켰다”고 성토했다는 박 의원. 하지만 박주천 의원과 마찬가지로 성경책을 자주 펼쳐보면서 자기수양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정대철 의원도 성경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한편 측근들로부터 무협지를 전해받아 최근 ‘무림의 세계’에 폭 빠져 있다고 한다. 정 의원을 면회하고 나온 한 인사는 “다른 의원들에 비해 여유도 있어 보이고 TV도 자주 보신다더라”며 “이미 수감생활을 겪은 적이 있어서인지 초조한 기색도 별로 없어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재욱 의원은 다른 의원들과 달리 시사주간지를 자주 넣어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한다고 한다. 자신을 비롯해 최근 수감된 의원들에 대한 기사가 어떻게 다뤄지는지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김영일 의원도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자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단다. 평소 독서를 즐겼던 김 의원은 수감될 때부터 아예 책을 여러 권 싸 가지고 들어간 케이스. 찾아온 지인들에게 “그래도 생각보다 지낼 만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마음의 ‘양식’을 자주 접해서였을까. 김영일 의원은 구치소 ‘식생활’에서도 수감된 다른 동료 의원들에 비해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고 한다. 면회 온 지인들에게 “구치소 음식이 괜찮다”며 오히려 위로를 한다고.
그래서인지 김 의원은 구치소 내에서 ‘수감 금배지 8인방’ 가운데 ‘관식을 가장 잘 먹는 의원’으로 꼽힐 정도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인들에게 ‘따로 음식을 넣어달라’는 요구를 지금껏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에겐 구치소 식단이 ‘바깥 세상’에서 접했던 음식에 비해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박주천 의원은 지인들에게 “반찬이 입에 안 맞는다”며 “김하고 귤을 좀 넣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정대철 의원의 경우 면회 온 지인에게 부탁해 김치를 받아서 반찬으로 먹었으며 얼마 전에는 한 측근이 통닭 한 마리를 넣어줬다고 한다.
물론 서울구치소에서는 외부 음식 반입을 금하기 때문에 면회 온 인사들이 넣어주는 음식은 모두 구치소 내 매점에서 파는 ‘사식’들. 이 때문에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며 손수 만든 음식 한 번 넣어주지 못해 눈시울을 적시는 부인들의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고 한다.
적적한 독방 생활을 하는 이들 의원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바로 지인들의 면회다. 정치인 생활을 오래 하면서 다져온 인맥의 효험이 ‘결정적 순간’에 발휘되는 셈이랄까.
가장 활발하게 ‘외부인사와 접촉’을 하는 이는 바로 박주선 의원이라고 한다. 구속적부심을 신청한 상태인 박 의원은 면회 온 측근들에게 “곧 나갈 테니 내가 없는 동안 지구당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며 안심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민주당 이훈평 의원도 많은 지구당 인사들이 면회를 오는 편이며 박 의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죄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두 의원에게는 같은 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면회 방문이 날마다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들은 물론 지역구 인사들과 당내 고위 당직자들이 줄지어서 면회를 오는 통에 일부 인사들은 ‘대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
얼마 전 박주선 의원을 면회하려 했던 민주당 유용태 원내대표측은 “워낙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박 의원이) 다음에 면회를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훈평 의원의 가족들은 잇달아 찾아오는 동교동계 의원들의 방문 러시에 밀려 면회 일정을 잡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한나라당 박재욱 의원에게는 자신이 설립한 경북외대의 교수 한 명이 날마다 찾아와 ‘시중’을 들고 있다. 박 의원은 경북외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된 상태지만 빠짐없이 찾아오는 이 교수의 정성은 가족들의 수발 수준을 넘어설 정도라고.
뜻밖에도,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의원들을 찾는 면회객은 날마다 줄을 잇는 반면 대선자금 관련 혐의로 구속된 의원들을 찾는 의원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한다. ‘계속 수사중’이라는 점 때문인지 면회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다.
주요 당직자들과 중진 의원들이 면회를 다녀간 것으로 알려지지만 이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부분 “아직 면회를 다녀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정대철 의원에게 면회를 다녀왔다는 아무개 의원측 인사는 “대선자금 관련 혐의로 구속된 인사들과 면회실에서 나눈 이야기가 보도될 경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며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듯 구속수감된 여러 의원들에 관한 이야기가 직·간접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지만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 실정이다. 최 의원의 가족들은 집에 걸려오는 전화도 일체 받지 않고 최 의원의 측근들도 대부분 휴대폰 전원을 꺼놓은 채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고 있다.
일부 정가 인사들은 최 의원에 대해 “대선자금에 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만큼 가장 입조심을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평했다.
한상진 기자 f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