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자민련 총재. 35세에 박정희 장군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 ‘2인자’로 지낸 때와 비교하면 물론 권세가 쫄아들었다.
또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팽을 당해 여당에서 쫓겨나온 뒤 자민련을 창당하고 다음해 16대 총선에서 무려 55석을 건졌을 때보다는 확실히 살림살이가 위축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 지난 14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만나 주먹을 쥐어보이는 김종필 총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해 한때 반기를 들었던 이인제 총재권한대행이 최근 당무회의를 여는 공개석상에서 ‘충성’을 맹세하며 ‘카놋사의 굴욕’을 재현해 보인 건 JP의 카리스마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 JP에게도 걱정이 하나 있다. 자민련의 왕국을 흔들어대고 자신의 유일 목표인 정당사상 초유의 ‘10선 고지’ 점령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JP는 1월1일에 일본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열흘 체류한 뒤 10일 오후 돌아왔다. 신춘정국 대응 구상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의 총선 목표와 대응 전략은 무엇일까.
JP의 1차적인 총선 목표는 더도 덜도 아닌, 비례대표 1석 확보다. 비례대표 1번은 당연히 JP이다. 이는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단 비례대표를 1석이라도 확보하려면 총선 총 투표수에서 3%의 유효득표를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자민련의 정당 지지율은 1% 내외다. 비례대표 1석도 확보할 수 없는 수치다. 때문에 JP는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전국에 후보자들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련의 한 의원은 “국회 정개특위에서 오는 총선에 ‘정당명부식 1인2표제’를 도입할 경우 무조건 후보를 내는 게 정당득표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길이라는 점을 JP가 잘 알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후보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따라서 후보들의 등록비 정도는 보전해줘야 하기 때문에 JP가 이번 총선만큼은 목돈 마련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JP의 두 번째 목표는 전체 의석 10석 확보. 국회에서 최소한의 폼을 잡기 위한 규모를 그는 10명으로 보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충청권 사수와 실지(失地) 회복이 시급하다. JP는 최근 성완종 충청포럼 회장을 총재 특보단장에 임명했다. 이명수 충남도 행정부지사와 도병수 전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 등도 입당할 예정.
자민련의 한 선거기획 전문가는 “대전에서 3석, 충남에서 6석, 충북에서 2석 정도는 무난히 확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1∼4명의 비례대표 의원 배출도 가능해진다. 여차해서 교섭단체가 구성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JP의 총선전략은 두 가지다. 먼저 지역주의를 철저히 이용한 ‘지역정당화 굳히기’. JP는 15일 신년교례회 명목으로 충북과 충남을 차례로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충청남북도와 대전에서 여러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우리가 비례대표를 포함해 스물너댓 석은 확보할 수 있습니다.”
JP는 자민련이 ‘오로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충청권 ‘대표정당’임을 부각시켜 충청권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충청권 지역에서 살아나기 시작한 자민련 지지도가 JP의 기를 더욱 세워준 감이 있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한나라당과 자민련 합당설을 썼다가 ‘혼쭐’이 났다. 기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JP는 “자민련이 동네북이냐”며 대로했다고 한다. 김 총재는 “(한나라당이) 돈 갖고 세상을 썩게 만들더니 이제 장난까지 치느냐”며 거친 언사를 퍼붓고, 해당 신문사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할 것을 지시했다.
총선에서 살아 남기 위한 두 번째 전략은 ‘왕(王)보수’ 이미지 굳히기이다. 김종필 총재는 신년사에서 “1백20년 전 나라의 개방과 개혁을 위해 일어났던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실패했던 일을 상기하면서 그 역사의 쓰라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했다. 개혁세력이 함부로 날뛰면 안 된다는 경고다.
지난번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JP는 세 가지를 주문했다. 미국과 사이를 벌리지 말 것, 기업인들이 소신껏 경제활동을 하도록 건드리지 말 것, 통일 문제에서 환상을 버리고 속도위반하지 말 것 등이다. JP의 한 측근은 “당내에서는 꼴통보수를 과시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어설픈 보수성과 차별성을 갖는 게 총선 전략상 낫다는 판단도 있다”고 밝혔다.
JP는 자민련도 개혁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당 쇄신위원회의 건의를 묵살하면서 1년 동안 쇄신안을 책상서랍 안에서 썩히고 있다. “뭐 그렇게 개혁, 개혁할 것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총선까지만 선두에 서고 대망의 10선 의원이 되면 그 뒤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총재를 선출한 뒤 2선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게 그의 약속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