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감금설’이 나돌았던 최룡해 총정치국장(왼쪽)이 대의원 명단에 포함돼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언제 다시 김정은 대신 목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북한과 접촉하고 있는 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 1월, 북한 군 내부에서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 이상 징후가 일어난 시점은 지난 1월 20일께. 당시 정찰부와 총참모부 등 군 핵심기관 소속 군인들이 화물차 50여 대를 이끌고 북-중 접경도시인 평안북도 신의주에 긴급 집결했다. 중국 무역상으로부터 비료 수입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화물차 규모만큼이나 상당한 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요신문>이 1138호 ‘대북 비료지원설 막후’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올해 북한은 농업 생산 증진을 제1순위 과제로 천명했다. 이 때문에 비료는 대중 무역에 있어서도 올 한 해 핵심 품목이다. 군 트럭의 신의주 집결이 사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북한 군부는 당 및 내각과 함께 직접 대외 무역을 담당해왔고, 특히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사후 군부의 파워는 더 막강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기 때문.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모든 군부의 화물차량이 집결하고 나흘 후, 갑자기 해산 명령이 떨어진 것. 그리고 해당 수입권을 모두 내각으로 넘기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군부 인사들은 이에 모두 황당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하는 수없이 명령을 따랐다고 한다.
이러한 이상 징후가 포착된 직후 2월부터 ‘김정은 시대 2인자’로 통하던 군부의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한동안 종적을 감췄다. 한국 내에는 ‘감금설’이 나돌기도 했다. 최룡해는 3월 7일 김정은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장면이 조선중앙방송에 포착됐고, 이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도 포함되면서 감금설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상황이지만 종적을 감춘 해당 시기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앞서의 소식통은 “당시 신의주에서 벌어진 군부 해산은 결국 최룡해에 대한 김정은의 경고이자 길들이기 차원의 지시였을 것이다. 장성택 사후 힘을 받고 있는 군부를 향한 메시지인 셈”이라며 “주목할 것은 해당 사업을 내각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내각의 수장은 박봉주 총리다. 최룡해로서는 상당히 기분 나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박봉주 내각 총리(오른쪽)가 지난해 12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올렉 쉬쇼프 러시아 모스토빅 과학생산연합체 총사장과 일행을 접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봉주는 당 서열 6위에 해당하는 최고위급 당료다. 평안북도 식료품공장장, 당 경공업 부부장, 화학공업상을 지낸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기업경영과 경제공업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박봉주가 처음 내각 총리직에 오른 것은 2003년. 하지만 2007년 4월, 그는 총리직에서 해임되고 순천비날론공장의 지배인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경제 영역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군부와 유류사용권을 두고 충돌했기 때문이다. 군부와는 상극인 셈이다.
그런 그가 다시금 재기한 것은 김정은의 눈에 든 덕분이다. 김정은은 경제와 공업 분야 경험 면에서 박봉주만 한 인물을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총리로 복귀한 박봉주는 각종 준공식에 김정은과 동행하며 경제통이자 핵심 실세로서 세를 과시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2주기 행사 때는 군부 인사들보다 앞서 김정은을 보좌하는 장면이 목격되는가 하면, 이따금씩 군부 행사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군부 책임자인 최룡해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행보였다.
북한 군부 출신의 고위급 탈북자는 “남한에서는 최룡해가 마치 대단한 권력자처럼 떠들어대지만, 그래봤자 김정은 수하다. 어차피 북한 체제 안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2인자란 존재하기 어렵다. 이는 장성택이 스스로 증명했다. 최룡해도, 박봉주도 어떻게 보면 실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깝다”면서 “김정은은 절대 어느 한 쪽에 힘을 몰아주지 않을 것이다. 당과 군, 내각 등 각 조직 간 힘의 균형을 최대한 맞출 것이다. 군부의 성장 역시 김정은으로서는 부담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2인자 자리는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다. 올해 김정은은 장성택 사후 경제 영역에 있어서 반드시 대내외적 성과를 내야 한다. 현재 북한은 신년사에서도 천명했듯,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농업 생산에 있어서 성과를 강조하고 있으며 대형 위락시설들을 대거 건설하는 등 외화벌이 사업에도 열정적이다. 하지만 장성택 사후 대중 라인에 심각한 훼손이 발생했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만에 하나 이러한 김정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올 한 해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2인자는 김정은 대신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앞서의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김정은 스스로 책임을 지진 않는다”며 “결국 그렇게 될 경우 희생양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 내부에선 경제 영역에 있어서 일선에 나서고 있는 박봉주가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룡해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