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닉세그의 One:1. 최근 제네바 모터쇼에서 최고시속 450㎞를 돌파한 것으로 소개됐다.
언론에서는 이 차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보도했지만, ‘One:1’의 최고속도는 제작사의 자체 테스트 결과일 뿐, ‘공인 속도’는 아니다. 코닉세그 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용화된 슈퍼카 중 가장 빠른 자동차’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사실 2000년대 들어 ‘가장 빠른 자동차’의 대명사는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 16.4)이었다. 이탈리아인 에토레 부가티가 세운 프랑스 브랜드(현재 폴크스바겐 그룹 산하)인 브가티는 최고급 자동차와 가장 빠른 경주용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로 이름 높았다. 부가티 베이론은 애초부터 부가티가 마의 시속 400㎞ 벽을 넘기 위해 만들어낸 슈퍼카다. 2005년 부가티 베이론은 마침내 상용화된 자동차로서는 최초로 최고속도 407㎞/h를 돌파하며 ‘도로 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이름을 올렸다. 차체 무게가 1890㎏에 달했지만 16기통 엔진이 1000마력에 이르는 엄청난 힘을 뿜어내 400㎞에 도달하는 데 5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부가티 베이론은 ‘도로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라는 영예를 불과 2년 만에 빼앗기고 만다. 미국의 대표적 튜닝업체 셸비(SCC셸비 슈퍼카즈)의 얼티밋 에어로 TT가 베이론의 최고속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얼티밋 에어로 TT는 6.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해 1183마력의 강력한 파워로 412.5㎞/h의 무서운 속도를 발휘했다. 이어 영국의 슈퍼카 전문업체인 키팅이 내놓은 키팅 KTR이 최고시속 418㎞를 돌파하면서 슈퍼카 세계의 스피드왕 대결은 춘추전국시대를 맞는 듯했다. 7.0리터 V8 슈퍼차저 엔진을 얹어 무려 1800마력의 최대출력을 자랑한 키팅 KTR은 차체가 카본으로 만들어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자존심을 구긴 부가티는 다시 최고의 속도에 도전해 1200마력의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Bugatti Veyron Super Sport)를 내놓으며 왕좌를 되찾는다. 2010년 베이론 슈퍼 스포츠가 기록한 최고속도는 431㎞/h, 제로백은 2.2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왕좌는 올해 들어 다시 흔들리게 된다. 지난 2월 14일 헤네시 베놈 GT(Hennessey Venom GT)가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활주로에서 가진 공식테스트에서 270.49mph(시속 435.3㎞)의 최고속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튜닝업체 헤네시가 제작한 베놈 GT는 7.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해 1244마력의 파워를 뿜어냈다. 제로백은 2.7초, 300㎞/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린 시간도 13.63초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코닉세그의 ‘One:1’이 최고시속 450㎞를 돌파한 것으로 소개되면서 슈퍼카 브랜드들의 스피드 대결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슈퍼카 브랜드인 코닉세그는 연륜은 짧지만 순발력과 스피드가 뛰어난 슈퍼카를 만들어내는 회사로서 명성을 지니고 있다. ‘One:1’의 이전 모델인 아제라 R(AGERA R)의 경우도 비공식 최고속도가 440㎞/h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2005년 부가티 베이론이 400㎞/h의 벽을 돌파하기 전까지 ‘가장 빠른 상용화된 자동차’의 자리에 올랐던 것도 코닉세그의 CCR(최고속도 388km/h)이었다. 어찌 보면 ‘One:1’의 탄생은 오래전 코닉세그의 기록을 깬 부가티에 대한 설욕전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제 슈퍼카 업계의 시선은 다시 부가티 쪽으로 향하고 있다. 연이은 도전에 직면한 부가티가 또 어떤 새 모델로 왕좌를 지켜낼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