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본 ‘야쿠자’가 한국에 ‘마수’를 뻗치고 있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
최근 일본의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쿠치구미’(山口組, 일명 야마구치파)의 중간보스와 행동대원들이 은밀히 입국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때문이다. 또 야쿠자 조직의 중간보스가 한국 업자와 짜고 수십억원대의 ‘카드깡’을 했다가, 덜미가 붙잡힌 사건도 발생했다. 야쿠자의 ‘검은 마수’가 속속 포착되고 있는 것.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 8월 말에는 일본의 도쿄 경시청 창설 이래 처음으로 총감이 방한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경찰은 국내 조폭과 야쿠자의 연계문제를 놓고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시청 총감이 우리 경찰에 ‘비밀 파일’ 하나를 전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주변 상황이 이렇게 긴박하게 돌아가자, 우리 경찰은 ‘야쿠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야쿠자와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지난 8월, 일본으로부터 50대 중반과 30대 후반의 ‘불청객’ 4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3명은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 중간보스와 행동대원들이었던 것. 야마구치파는 지난해 3월, 두목과 행동대원 40여 명이 우리나라 관광을 위해 몰려와, 경찰을 긴장시켰던 바로 그 조직이다. 하지만 우리 경찰은 이들의 입국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됐다. 그것도 경찰의 자체 정보가 아닌 이들로부터 감금·폭행당했던 피해자측의 신고가 접수된 이후였다. 야쿠자 조직원들이 우리나라에 은밀히 ‘행차’한 것은 일본 유흥업소에서 돈을 떼먹고 도주한 한국인 여성 2명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 6월, 한국인 소개업자를 따라 16명의 여성이 무더기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일본 유흥업소로 돈벌러 가는 ‘직업 여성들’. 그런데 이들 중 2명이 일본의 유흥업소에서 ‘선불금’으로 받은 돈을 갚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도망 왔던 것이다. 이에 야쿠자는 ‘체포조’를 만들어, 도주한 여성들을 뒤따라 들어왔다. 한국에 온 야쿠자는 일본 유흥업소에 한국 여성들을 처음 소개했던 한국인 인신매매범의 ‘협조’를 받아, 한국으로 도망 왔던 김선영씨(가명·26·여)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야쿠자에게 붙잡힌 김씨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객실에서 11시간 동안 감금됐다. 여기에 야쿠자들은 김씨에게 돈을 갚으라며 폭행까지 가했다는 것. 결국 김씨는 자신이 빚진 7천여만원 중 2천여만원만 먼저 갚고 나머지 5천만원은 나중에 갚겠다는 내용의 공증 문서를 작성한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와 함께 한국으로 도망쳐왔던 여성(29)으로부터 김씨가 감금됐다는 신고를 받고서야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야쿠자 행동대원들은 유유히 일본으로 떠난 다음이었다. 경찰은 “일본 야쿠자가 입국했다 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수사당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며 “야쿠자 조직원들이 우리 경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안방 드나들 듯하는 경우는 많다”라고 전했다.
최근엔 ‘야쿠자 꼬붕’뿐 아니라 ‘오야붕’도 은밀히 입국,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지난 9일, 경찰에 체포된 모토히로 히데라츠씨(39)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모토히로씨는 지난달 30일 입국해 신용카드 28장을 위조, 사용하다가 꼬리가 밟혔다. 경찰은 모토히로씨가 서울 이태원 일대의 도·소매점 업주와 짜고 속칭 ‘카드깡’을 통해 1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했던 것.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모토히로씨는 일본 야쿠자 조직인 ‘이나가와카이’(稻川會)의 부두목인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해 3월 일본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두목과 행동대원 등 ‘야쿠자’ 40여 명이 관광차 입국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당시 ‘야쿠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 | ||
최근 들어서는 국내 폭력조직이 일본 야쿠자와 손잡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 지난 8월 검·경 조직폭력사범 전담 합동수사부는 일본으로 가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수유리파’ 행동대장 오아무개씨(32)를 구속했다. 오씨는 지난 2000년 5월 두목인 김아무개씨가 일본 나고야에서 운영중인 호스트바 주변에 또 다른 호스트바를 오픈하려고 준비하던 지아무개씨(33)를 집단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유리파’ 두목 김아무개씨는 지난 1999년 검찰의 지명수배를 받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은 것으로 합수부 수사결과 밝혀졌다. 그렇지만 김씨가 일본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현재는 기소 중지된 상태.
최근 몇 년 사이 야쿠자와 국내 조폭의 연계 활동이 활발해지자, 한·일 양국 경찰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8월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 동안 일본 도쿄 경시청의 이사카와 시게아키 경시총감(55) 일행이 1872년 도쿄 경시청 창설 이래 처음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지난 1999년 8월 서울경찰청과 도쿄경시청이 우호결연을 맺었고, 당시 이무영 서울경찰청장이 경시청을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양국 경찰 수뇌부는 이번 방한 기간동안 국내 조폭과 일본 야쿠자의 최근 급증하는 연계활동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로는 이사카와 총감은 방한 당시 우리 경찰에 ‘비밀 파일’ 하나를 건넸다.
그렇다면 이사카와 총감이 건넨 의문의 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2백98명의 신상명세가 적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파일에는 일본에서 강·절도나 사기 범죄를 저지른 한국인과 일본 경찰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한국인 명단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사카와 총감은 우리 경찰에 파일을 건네주면서 “파일에 수록된 사람들이 한국의 조직폭력배인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이에 경찰은 이 파일에 기록돼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신원조회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조회 과정에서 한 동안 부산 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조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본으로 건너간 국내 조폭 가운데 상당수는 야쿠자와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사 관계자들은 “국내 조폭과 야쿠자의 활동 반경이 국경을 넘나든 지 오래됐고, 야쿠자의 ‘한국 나들이’도 현재보다 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