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경 씨가 <일요신문>에 건넨 가족사진.
[일요신문] 나훈아와 정수경 씨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지낸 세월은 무려 7년이나 된다. 그 사이 미국에선 나훈아와 정 씨가 이혼 상태가 됐고, 한국에선 대법원까지 가는 이혼 소송이 이어졌다. 결국 한국에선 정 씨가 이혼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이들의 법적 부부 관계가 이어지게 됐다. 또한 그 사이 나훈아의 아들은 아버지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나훈아가 정 씨와 두 아이의 곁을 떠난 것은 2006년 연말이다. 하와이에서 살던 정 씨가 아들이 있는 보스턴으로 이사한 지 채 반 년도 안됐을 당시의 일이다.
― 마지막 만남은 언제였나요?
▲ 2006년 연말에 남편이 보스턴 집에 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여행을 떠나 쉬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렇게 떠날 때만 해도 1년 정도 우릴 찾아 오지 않겠구나 여겼어요. 그런데 한 달 정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남편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더니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연락처가 끊겨 있더군요. 아들 결혼식 때 남편이 보스턴엔 온 것 같은데 결국 결혼식장엔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난 뒤에는 다시 2~3년 정도 지나면 가족을 찾을 거라 여겼는데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나훈아가 세간에 화제를 뿌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2월이다. 갑작스럽게 콘서트가 예정돼 있던 세종문화회관 대관을 취소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나훈아의 잠적설은 2007년 여름을 지나며 건강악화설로 번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을 지나면서 악성루머는 점점 지독해졌다. 야쿠자 연루설, 신체 중요부위 절단설, 여자 톱스타 연루설 등으로 변형된 것. 결국 2008년 1월 나훈아가 기자회견을 열어 악성 루머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그를 둘러싼 소문은 잦아들었다. 그 1년 동안 가족들 역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국내에서 한창 나훈아 잠적설, 건강악화설 등이 나돌고 있던 2007년 8월, 나훈아의 아들이 미국 보스턴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나훈아는 결혼식에 불참했는데 이 부분은 이혼 소송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됐다. 이혼 소송 당시 나훈아 측 변호사는 “2007년 8월 나훈아가 아들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미국 보스턴에 갔지만 정 씨에게 참석을 거절당했고 3년 동안 부인의 사과를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이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나훈아 씨 쪽에선 ‘아들 결혼식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거부당했다’고 주장합니다.
▲ 절대 아니에요. 2006년 연말 우리 곁을 떠난 남편이 대뜸 아들 결혼식 3일 전 집에 전화를 걸어 ‘지금 호텔이야’라고 얘기했어요. 보스턴에 왔다는 얘기 같은데 집으로 오면 되는 걸 호텔이라니 어이가 없었어요. 그 전에는 미국에 오면 직접 집으로 오거나 공항에 배웅 나오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호텔이라니 놀랐죠. 남편은 이미 아들 결혼식 날짜는 알고 있었어요.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아들 결혼식에 올지 알려달라’고 연락을 취했지만 답이 없었어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결혼식을 앞두고 누가 올지, 좌석 배치까지 다 해야 돼요. 그런데 계속 연락이 없어서 남편의 자리를 빼 놓고 결혼식을 준비했어요. 청첩장에도 남편 이름은 넣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선 호텔이라니 황당했죠. 화가 나서 ‘결혼식 때 얼굴 붉힐 일 있겠네요’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어요. 그래도 아들 결혼식 날에는 집으로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결국 나타나지 않더군요. 행여 내가 오지 말라고 했더라도 아들 결혼식인데 당연히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 2007년 한 해 동안 각종 소문이 넘쳐 났어요. 그로 인해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었죠. 미국에 있어도 인터넷을 통해 소식은 다 접할 수 있고 아이들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그런 얘길 다 들었으니까요.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긴 만큼 어느 소문은 말도 안 되려니 했고, 또 어느 소문은 정말 사실일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야쿠자가 등장하는 신체절단설은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렇지만 우리하고도 연락이 끊겨 있는 터라 어찌 할 도리가 없었어요.
일요신문DB
항간에선 친한 지인이 운영하는 부산 소재의 한 병원에서 기거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기자는 부산 소재의 해당 병원, 나훈아가 부산에서 자주 기거하던 곳 등을 직접 취재했지만 부산에서도 나훈아의 모습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를 봤다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이제야 확인된 것이지만 적어도 2007년 8월 아들 결혼식 3일 전에는 미국 보스턴 소재의 한 호텔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확인된 나훈아의 2007년 유일한 모습이다.
― 2008년 1월 나훈아 씨의 루머 해명 기자회견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착잡했죠.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기자회견을 다 볼 텐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인터뷰하는 건 좋지만 수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나이와 입지를 생각해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죠. 특히 퍼포먼스(바지 지퍼를 내리려고 한)가 너무 과격했죠. 뭘 지키려고 저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애들 보기가 민망했어요. 아이들도 상처를 받았죠. 딸이 고3 때인데 몰래 숨어서 울었어요.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 따님은 왜 울었을까요.
▲ 그 자체가 슬픈 거죠. 그 사람들(악성 루머에 휘말린 후배 여자 연예인들)을 위해선 저렇게 하면서 가족한텐 연락도 없는데 얼마나 가슴에 큰 상처였겠어요. 당연히 그러지 않겠어요? 기자 회견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선 뭐든지 하면서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궁금해요. 딸이 ‘아빠는 저 여자(후배 여자 연예인)는 중요하고 나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아빠한테 버려졌다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그래도 우리 딸은 지금도 그래요. ‘아빠 많이 보고 싶다’고.
그렇게 나훈아는 2008년 1월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악성루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물론 그의 가수 생활 중단과 잠적은 계속됐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한 꿈을 충전하고 있는 것이려니, 하루 빨리 꿈을 충전해 다시 무대에 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중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대중들에게 들려온 소식은 나훈아의 컴백 뉴스가 아닌 부인 정 씨와의 이혼 소송이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
(정수경 씨 인터뷰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