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함께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것이다. 정부부채와 가계부채가 각각 1000조 원을 넘어 언제 연쇄부도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향후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 할 경우 경제가 자생력을 잃고 쓰러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실업과 부채가 꼬리를 물고 증가하는 파국의 악순환에 걸릴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규제개혁은 과거의 정부주도 경제운영 방식을 버리고 창의적인 민간주도 경제운영 방식을 택하는 체제의 혁신이다.
이에 따라 경제가 투자활력을 되찾을 경우 다시 성장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1980년대 이전 우리 경제의 투자증가율은 10% 이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4%로 떨어지고 급기야 2000년대 들어서 1%대로 추락했다. 규제개혁은 바로 이와 같이 식물상태가 된 투자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규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인가, 허가, 신고 등의 승인절차는 물론 적발, 지시, 처벌 등 관리와 통제가 정부부처별로 중첩되어 정상적으로 기업하는 것이 거의 어려울 정도다. 이는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과정에서 발달한 관료주의가 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제를 양산한 결과다.
규제개혁은 잘못하면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는 모순이 있다. 마치 암수술을 할 때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암세포가 더 확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대정부가 예외 없이 규제개혁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거꾸로 규제를 늘린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이러한 역설은 최근 더욱 두드러져 2007년 5000건 수준이었던 규제가 지난해 말 1만 5000건 이상으로 늘었다.
주요 이유는 정부가 규제의 주체이자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조직과 권력구조를 해치는 규제개혁은 당연히 외면한다. 대통령의 요구가 빗발쳐도 필요 불가결한 규제들 먼저 없애겠다고 내놓아 개혁을 무위로 돌리거나 전시적으로 사장된 규제나 지엽적인 규제를 폐지하고 대신 더 큰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규제개혁을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부 시스템의 변화다. 정부의 기본개념을 국민의 통제나 관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체제로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조직과 인력을 배치하는 장기적인 정부개혁의 청사진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규제를 단계적으로 바꾸거나 폐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규제생산의 결과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발생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당연히 정부 시스템의 개혁은 정치권이 국민의 뜻을 모아 입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번 규제개혁방안을 놓고 여당은 맞장구치기에 급급하다. 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의혹을 먼저 내세우고 있다. 규제개혁 논의 자체가 정치논리에 휘말릴 전망이다. 어느 나라 정치인들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