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에는 4·15총선 때까지의 촉박한 일정 때문에 양당 내 공조론자들이 여느 때와 다른 각오를 피력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직은 양당 모두 당내 이견이 적지 않은 상황이지만 ‘총선 승리’란 절체절명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공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주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우리당 간 ‘공조 불가피론’은 여러 계기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엎치락 뒤치락했던 양당의 지지율이 1월 중순 이후 점차 격차를 벌여가고 있다는 것.
여권 핵심부가 총선을 열린우리당-한나라당 간 ‘양강구도’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경주하고, 이에 맞서 민주당이 조순형 대표의 대구 출마 발표와 한화갑 전 대표, 김경재 상임중앙위원 등의 지역구 이전선언을 통해 ‘뒤집기’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열린우리당의 우세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컴백하면 한화갑 전 대표(왼쪽)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
MBC-코리아리서치가 25일 실시한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25.8%의 지지율로 한나라당(18.3%)을 멀찌감치 제치고 1위를 고수한 반면 민주당은 11.8%에 그치는 부진을 나타냈다. 조 대표의 대구 출마 선언 등으로 지지율 반등을 꾀했던 민주당으로선 열린우리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된 데 대해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KBS-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25일) 결과는 민주당에 더 큰 충격이었다. 정당 지지도에서 열린우리당(23.4%) 한나라당(19.9%) 민주당(12.0%)의 순서도 문제지만 승부처인 수도권, 호남권에서 지지율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서울의 경우 열린우리당이 32.2%의 지지율을 보인 반면 민주당은 14.1%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인천-경기에서도 10.9%포인트(열린우리당 22.7%, 민주당 11.8%) 차이가 났다. 특히 민주당이 ‘텃밭’으로 자신했던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30.4%에 그쳐 열린우리당(31.4%)에 추월당한 것은 지도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수도권은 물론 호남권에서 열린우리당의 ‘초강세’가 확인되자 해당 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 원래부터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에 적극적이었던 수도권 의원들은 물론이고 최근 중진들의 수도권 전출과 물갈이 논란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인 호남권에서도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우려했던 대로 총선이 양강구도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 같다. 조 대표가 대구 출마 선언이란 ‘극약 처방’을 썼는데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현재 상황으론 민주당에 기대할 게 없다는 유권자들의 판단이며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치라는 요구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민주당 탈당도 호남권을 중심으로 공조 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DJ는 그동안 외형상 ‘정치적 중립’을 내세웠지만 민주당쪽에 기울어 있던 것이 사실. 그런 DJ가 김 의원의 민주당 탈당을 권유 또는 묵인했다는 것은 열린우리당 주도의 공조에 사실상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DJ로서도 전당대회(1월11일) 이후 정당 지지율에서 열린우리당이 급상승세를 보인 반면 민주당은 하락·정체로 굳어진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여기에 최근 여권 핵심부가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추진중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도 거론되고 있다.
DJ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햇볕정책’의 충실한 집행자였던 박지원 임동원씨 등 측근들이 사법처리된 데 대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만큼 여권과의 관계개선에 나섰으며 DJ입장에선 이를 양당간 공조란 정치적 메시지로 정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여권에서도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의 구속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공조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이 행동반경을 넓혀나가기 시작한 것. 김 대표는 특히 민주당 조 대표의 대구 출마선언 발표가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국적 결단’이라 평가하며 초당적인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정적을 이롭게 하자는 해당(害黨)행위”라는 당내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린우리당이 조 대표 출마 지역에 당의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당선을 위해 적극적인 선거공조를 할 수 있도록 당에 건의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총선 출마를 위해 2월 초 청와대에서 나올 것이 확실시되는 문 실장의 향후 행보도 관심의 대상. 스스로 ‘운명적인 통합론자’를 자처해 온 문 실장은 우리당에 돌아오는 대로 김 대표와 김원기 전 공동의장 등과 함께 ‘공조 불가피론’ 전파에 적극 나설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DJ와 한화갑 전 대표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민주당 내 호남 물갈이 논란이 가열되면 될수록 열린우리당과의 공조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특히 한 전 대표가 열린우리당과의 공조 쪽으로 분위기만 잡아준다면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으며 아마 문 실장의 존재는 이때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대위 핵심 포스트를 맡았던 한 의원은 “양당간 공조 여부는 호남-수도권 내 반노(反盧) 중진들이 얼마나 교체되느냐에 따라 속도와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며, 민주당 현역 의원 80% 이상은 재통합을 원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여권 내에서 ‘영남발(發)’ 공조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민주당 조 대표가 ‘불모지’나 다름없는 영남권에 새 깃발을 꽂겠다고 나선 만큼 열린우리당이 이를 지원할 경우 ‘지역구도 타파’라는 양당의 공동 목표가 마련되고, 이를 고리로 공조 범위를 충청-강원권 등 양당의 이해 충돌이 적은 권역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뼈대. 만약 공조가 이 같은 수순대로 원만히 진행되면 수도권, 호남권 역시 연합공천 등을 통한 공조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이들은 설명하고 있다.
여권과 민주당 내 공조론자들은 공조 원칙만 양측간에 합의되면 시기와 방법 문제는 자연스레 풀릴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밝히고 있다. 우선 시기는 청와대-내각 개편과 각 당의 자체 공천자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2월 중·하순부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되고, 방법은 이미 공천 방법론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여론조사 방식을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선거 전 재통합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만큼 일단 양당이 각자 공천작업을 벌여 후보를 확정지은 뒤 수도권과 호남권 등에 한정해 여론조사를 실시해 우위에 서 있는 후보로 연합후보로 결정하면 된다.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은 이 방법뿐이며, 그래야 총선 후 양당간 통합을 자연스럽게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해 총선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공조를 추진중임을 분명히 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