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선>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현지 선교사의 안내로 이슬람 국가에 선교 봉사를 떠난 8명의 한국인이 현지 이슬람 반군에 피랍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는데다 겉으로만 선교사일 뿐 돈 벌기에 급급한 세속적인 인물의 회개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이 감독 뿐 아니라 다수의 출연자들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만든 영화임을 분명히 밝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고 박욕식 역시 그런 인연으로 이 영화에 출연했다. 이 감독과 고교 1년 선후배 사이인 고인은 한국기독실업인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매주 목요일 조찬예배에서 만난 사이다. 이 감독은 “배우 박용식이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좋은 역할을 맡겼을 텐데 안타깝다”며 고인에 대한 애절함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의 엔딩 크래딧 역시 “배우 故박용식 선생님의 영혼에 바칩니다”라는 애도 메시지로 시작됐다.
그렇지만 분명 종교 영화는 아니다. 종교 자본으로 종교인들이 만든 영화가 아닌 독립 영화다. 이 감독 역시 종교인이 아닌 거장 감독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게다가 주연 배우 오광록은 기독교인도 아니다. 영화가 그리는 큰 줄기는 분명 기독교적인 관점에 충실하지만 극한 상황에 내몰린 9명의 피랍 한국인의 심적 변화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놓고 볼 때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세속적으로 변질된 선교사, 믿음이 없는 장로, 다정한 부부로 보이지만 실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미 이혼을 결심한 부인, 다정한 남편이자 충실한 교인으로 보이지만 실은 불륜 대상인 여성 신도와 함께 선교를 떠난 남성, 불륜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등 선교를 목표로 현지를 찾은 8명의 한국인과 현지 선교사는 모두 인간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이런 나약한 인간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심리 변화를 일으키며 또 어떤 결정을 내릴 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다. 이런 갈등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극한 상황이다. 이슬람 반군에게 피랍된 기독교 선교단체 인물들.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이들은 적이다. 피랍한 이들과 피랍된 이들, 그렇지만 다같은 인간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만 절대적인 장벽을 마주하고 선 이들은 결국 결정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고뇌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다수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진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당시 국내 여론이 피랍된 샘물교회 교인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댓글을 통해 피랍된 한국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 여론과 피랍된 이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목사들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74년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스타감독이 됐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메가폰을 내려놓았던 이 감독은 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컴백하면서 사실주의 기법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 감독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은 영화 <시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종교적인 영화에 그칠 수도 있었던 영화 <시선>은 이 감독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을 만나면서 한결 완성도 높은 영화로 거듭났다.
다만 기독교인은 선하고 이슬람교인은 악하다는 양분법적인 접근이 불편한 관객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이슬람 교인의 상당수는 지구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이슬람 단체와 반군 등이 테러와 피랍 등을 일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슬람 반군은 그런 극히 일부를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이 감독은 실존하는 국가가 아닌 가상의 국가인 이스마르의 리엡립 지역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다. 결국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분을 떠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이들의 이여기를 가상 국가라는 상상 속의 공간에서 그려낸 것이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가 발전하고 있지만 자본의 영향력 아래에서 흥미 위주의 영화가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영화계를 위기에서 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원동력이 돼 주는 것은 독립영화”라며 “예전에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객들의 영혼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시선>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기독교인이라면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 ‘순교와 배교 사이에서의 결정’은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느껴봤을 고민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교인에게도 유효한 추천이다.
2.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 등 심리적인 측면이 강조된 영화를 즐기는 영화팬이라면 추천한다.
3. 오광록의 팬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신들린 듯 한 오광록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주도한다. 심지어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인 오광록의 회개 장면에 대해 이 감독은 “가장 고민했던 장면인데 결국은 아무런 별도의 장치 없이 오광록의 연기 하나로 최고의 장면을 완성했다”고 말할 정도다. 고 박용식의 유작으로 고인의 마지막 작품 속 연기도 빼어난 데다 아직은 신예인 남동하 서은채 이승희 등 다른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말까?
1. 분명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킬링타임용 무비, 흥미진진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겐 추천하기 힘든 영화다.
2. 종교적인 관점을 배제해도 분명 좋은 영화지만 아무래도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영화이긴 하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조된 영화를 꺼리는 관객에겐 비추다.
3. 비슷한 소재의 영화로 소말리아 해적의 선적 피랍을 다룬 영화들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 <캡틴 필립스>를 재밌게 본 이들에겐 비추, 덴마크 영화 <하이재킹>을 재밌게 본 이들에겐 강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