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도 근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서였다. 그러니까 그때의 관심은 근대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근대의 종말과 관련된 관심이겠다. 현대사회에서 근대적인 것이 어떻게 해체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관심! 그렇다면 요즘 근대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볼 것인가. 그건 분명히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이었다면 근대에 대한 관심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1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삶의 양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시대에 대한 관심인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잉카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무기의 문제다. 근대라는 시기에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것은 서구문명이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무기가 강했고, 그들의 정신이 무자비했기 때문이다. 무자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동양으로 건너와 오래된 문명을 누리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며 함부로 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가장 오만했던 표현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의 말이 아니었을까. 그 말은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꾸지 않을 단 한 사람의 의미가 아니니까.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대단하다해도 그 말은 거대하고도 심오한 인도문명, 동양문명을 무시한 무식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강자의 논리를 배우기 위해 근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살아남는 것밖에 없는 삶은 무섭고 징그럽다. 나는 기억하고 싶다. 근대 기술문명의 그늘에서 사라져간 문명들을. 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고, 잉카문명이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 문명이었다. 그리고 살아남기는 했지만 열강의 침략에 결국 나라를 잃어버려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우리 조상의 삶도.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싸우면 강한 자가 이긴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살아야 할 때는 강한 것은 그저 울타리일 뿐, 삶의 내용은 강한 것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