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인간군상과 끊임없는 권모술수를 보며 혜안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만 읽은 사람과는 중국사를 논하지 말라. 삼국시대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를 모르는 사람이면 한족 중심의 역사관에 빠져 있을 것이다.
<삼국지>로 대변되는 시기는 400년 동안 이어진 위진남북조 시대의 서장에 해당하는 불과 100년 남짓한 기간이다. 따라서 삼국 시대에 뒤이어 이어지는 위진남북조 시대를 읽어야만 전체 역사의 흐름을 하나로 꿰어 맞출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족 사가들은 위진남북조시대를 중국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로 보고 있다. 북조정권을 ‘5호 16국의 난’이라는 표현하는 것이 좋은 예다. 흉노·갈·선비·저·강이라는 이른바 ‘오랑캐’가 잇달아 정권을 수립하여 서로 흥망을 되풀이 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조는 서쪽 문화를 받아들여 불교문화를 크게 융성시켰다. 또한 호족과 한족의 문화를 융합하는 호한문화를 형성하며 수·당 시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그 바탕을 마련했다. 과거제 등 이 시기에 체계화된 제도와 사상이 한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 교과서’가 아니다.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동탁을 능가하는 폭군과 조조를 빼닮은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일명 ‘백치 황제’라 불리던 진혜제는 수많은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어가자 먹을 것이 없다면 왜 고기로 죽을 쑤어 먹지 않느냐고 문무백관들에게 되묻기까지 했다.
만세의 폭군이라 일컬어지던 석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들 석선의 사형식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하들과 함께 친히 관람하기도 했다. 석선은 칼로 저며지고, 눈과 혀가 뽑히고, 마지막엔 불에 태워졌다. 나라를 말아먹은 암군도 있었다.
일명 ‘황제 보살’이라 불리던 양무제는 불교에 너무 귀의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불가에 의탁하고 황제 자리까지 벗어던진 다음 절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의 신하들은 중이 되겠다는 황제를 모셔 오기 위해 수많은 돈을 다시 절에 내야만 했다.
현군들도 많이 존재했다. 후조의 석륵은 평생 동안 단 한 자도 읽지 못한 문맹이었지만, 사관들이 읽어 주는 사서의 내용을 듣는 것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교를 세워 학자들을 양성했다. 전진의 부견 역시 한족과 호인들을 하나로 묶는 화이혼화를 꿈꾸던 훌륭한 제왕이었다.
장군 부등의 이야기는 기이하기까지 하다. 부등은 매번 강족 군사를 깨트린 뒤 그 시체를 ‘숙식’으로 부르며 식량으로 삼았다. 이른바 시신을 익혀 먹은 것이다. 그는 휘하의 전사들에게 매번 이같이 격려했다. “너희들이 아침에 싸우면 저녁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 굶주림을 걱정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서문’에 해당하는 삼국 시대의 서적만 난무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연의의 복사판 내지 개작만 넘쳐난다며, 왜곡된 ‘서문’을 읽을 경우 그 폐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의 역사를 알아야, 한족 중심의 중국 역사를 넘어서서 보다 큰 시각에서 동북아 전체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신동준 지음. 을유문화사.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