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퇴임 이후 7개월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 9월 30일 채 전 총장이 퇴임식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모든 루트가 꽉 막혀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근황에 대해 검찰의 한 정보관(IO·Intelligence Officer)이 내 놓은 대답이다. 지난해 9월 말 이후 지금까지 일체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채 전 총장. 그를 찾는 취재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우선 <일요신문>은 채 전 총장의 사법연수원(14기) 동기이자 채 전 총장과 비슷한 시기에 대검찰청 등에서 간부를 지냈던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 2명, 채 전 총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고검장 출신 변호사 등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에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임 아무개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2억 원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이 아무개 씨가 삼성그룹 계열사를 나와 들어간 회사인 서울 방배동의 에프티이앤이(FT EnE)를 찾았다. 이 회사 상근감사로 근무 중이며 채 전 총장의 연수원 동기이자 과거 동서의 연을 맺었던 김 아무개 감사를 만날 목적이었다. 먼저 찾은 곳은 그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창조였다. 하지만 창조 측은 “여기로는 거의 출근하지 않는다. 사건이 있을 때만 나온다. 김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라면 하지 않는다. 돌아가라”고 말했다. 에프티이앤이에서 어렵게 만난 김 감사는 흥분된 어조로 “당신들과 할 말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채 전 총장 측에 검은 돈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그의 동창 이 아무개 씨에게도 과거 회사 재직 시절 휴대폰 번호로 전화해 봤지만 예상대로 그가 아니었다. “번호가 바뀌었어요”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를 찾는 많은 전화가 왔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다.
이처럼 채 전 총장은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을 작심한 듯 ‘무한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전직 검찰 지검장 출신 한 인사에게서 채 전 총장의 간접적으로 행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인사는 “채 전 총장이 광주광역시의 한 지인 집에서 머무르며 바람 쐬러 남쪽으로 자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그게 마지막 행적이고 최근의 일이다”고 말했다.
채 전 총장은 지난해 검찰총장 퇴임 다음 날인 10월 1일, 당시 변호인에게 ‘산에 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산행에 나섰다가 강원도의 한 암자에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 이후엔 경기 용인 자신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외삼촌 집이 있는 경남 창원을 포함해 전국 각지의 지인 집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최근엔 광주다. 그런데 마뜩잖은 칩거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진 탓일까. 법조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우울증에 걸려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채 전 총장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둘러싼 어수선한 상황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잠행을 하며 추후 대응 방식에 대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애초 이번 사태는 ‘채 전 총장이 청와대의 불순한 의도에 의해 밀려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에 채 전 총장으로서도 검찰의 개인비리 수사 등에 대해 철저하게 ‘정무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흘러나온 수사청탁 관련 금품수수 의혹은 채 전 총장에게는 치명적인 이미지 추락이나 다름없다. 채 전 총장은 검찰 내의 대표적인 강직한 검사였고 자존심도 강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자존심을 누르고 ‘잔챙이’같은 수사청탁 무마 의혹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자칫 감정적으로 대응에 나섰다가 청-검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채 전 총장은 자신이 권력에 밉보여 검찰총수직을 잃었다는, 그런 피해의식이 강하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처에다 소금을 뿌린 격이, 최근에 터져 나온 수사청탁 무마 관련 금품수수 의혹 아니겠느냐. 전직 검찰수장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초지일관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일단 시간을 벌어 자신을 둘러싼 추문이 희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으로 본다. 그 뒤 검찰이 소환을 통보하는 등 공격적 대응을 할 경우 채 전 총장도 움직이지 않겠느냐. 하지만 청와대도 채 전 총장을 검찰에 소환하는 등의 압박 작전을 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분간 이번 사건은 계속 잠복해있을 것이고, 채 전 총장도 마찬가지로 잠행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전직 검찰총장이 사생활과 관련하여 석연치 않게 물러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 속도와 방향을 독자으로 판단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문제다. 청와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검찰 내부에서는 여전히 채 전 총장에 대한 신망이 두터운 편으로,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그의 개인 비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검찰 내부에서는 올곧기로 유명하던 그 분이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며 “수사 담당 부서 외에는 일체 채 전 총장 관련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 전 총장과 관련한 수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와 형사6부에서 하고 있다. 청와대 불법 사찰에 대한 부분은 형사3부, 채 전 총장 개인비리 쪽은 형사6부다. 형사3부에서 맡고 있는 청와대 뒷조사 부분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이 간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정도다. 형사6부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 뒷조사 부분보다는 개인비리 쪽으로 수사 초점이 맞춰지던 초기와는 다른 양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울고검과 중앙지검에 출입하는 한 일간지 법조팀 기자는 “형사3부도 ‘수사 진행 중’이라는 제스처만 취하고 있을 뿐이지 수사의 무게중심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형사6부는 더욱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최근 기자단 안팎에서도 ‘서울시 간첩사건’과 ‘롯데홈쇼핑 납품비리 사건’에 가려 채동욱 전 총장 사건은 관심에서 많이 밀려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예상보다 더욱 장기화 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채 전 총장이 은둔 생활을 접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을 전망이다. ‘찍어내기’ 의혹에 시달리는 청와대나, ‘개인비리’ 의혹까지 겹친 채 전 총장 모두에게 현재로서는 ‘시간이 약’인 셈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