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무인기 사태’를 두고 군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는 야권에서 군의 무능을 겨누기 전에 박 대통령이 선수를 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24일 박 대통령이 강원도 양구군 을지부대를 방문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성격의 오는 6·4 지방선거를 두고 청와대가 쥔 카드가 무엇인지 엿보려 애를 쓰고 있다. ‘선거의 여왕’이 빠진 첫 대규모 ‘선거전쟁’을 앞두고 있는데도 새누리당이 영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이 관계자는 “야권이 헛발질을 해줘 유리해진 것 말고는 새누리당의 전략적 움직임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BH도 못마땅해 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과 감기몸살로 2주 만에 연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 대통령의 첫 마디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질타였던 것을 두고 일각에선 북한 위협 분위기 조성용 ‘안보 카드’로 해석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무인기 정찰을 두고 군 당국이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에 목소리를 높였다. 대비책 강구, 경계 강화, 안보태세 등을 거론하자 일부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 인책론까지 이야기했다. 왜 그랬겠는가. 야권에서 우리 군의 무능을 겨누기 전에 박 대통령이 선수를 쳐 힘을 뺀 것이다. 북한 문제는 철통안보 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으로선 항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다.”
박 대통령은 당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정찰을 강화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북의 어떠한 추가 도발도 즉각 처단하고 격퇴할 수 있는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대단히 강력한 단어들을 썼다는 전언이다.
두 번째로 많이 거론된 지방선거용 툴은 ‘공약 카드’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대선 공약을 구체화하고 그 실천 시기를 못 박는다는 것.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공약이기에 야권에서는 비판하기 어렵고, 여권의 지방선거 후보로서는 ‘제가 해내겠다’는 식의 아전인수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한 친박계 의원실의 전략 담당 보좌관은 이런 말을 해줬다.
“원래 박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론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어서 더욱 강력하다. 서울, 충남, 강원이 새누리당 약세 지역으로 꼽히고, 부산이 세모(△) 정도라면 이쪽 지역 공약 중 하나씩을 꺼내 현실화하면 반전도 노릴 수 있다. 여당 후보는 정부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면 내리막길 자전거 타기 정도로 쉬운 일이 된다.”
서울·수도권에선 교통 대책이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한류 지원,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 조성 등이, 충남에는 도청 이전 소재지 지원, 충청내륙고속도로 건설, 공주·부여 백제역사문화도시 조성, 강원에선 동계올림픽 지역 복합관광 중심지대 육성,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조기 착공 등이 박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부산에선 가덕도 신공항 유치 이야기가 슬금슬금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 말고도 빼 쓸 수 있는 공약 카드는 부지기수다.
다음이 ‘인물 카드’. 그것도 야권에서 지난하게 물고 늘어지는 남재준 국정원장, 현오석 경제부총리 경질안은 깜짝 카드로 꼽힌다. 지방선거 직전, 야권 요구에 응하면서 싸고돌던 인물을 내치는 모양새는 지방선거에 패할 경우 불가피할 정국 쇄신 카드로도 유용하다. 특히 전·월세 대책 실패에 대한 책임자 문책은 서민층과 중도층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진단이 여럿 나왔다. 지난해 여권에서부터 제기된 현오석 경질론에도 박 대통령이 꿈쩍 않은 것은 이번 지방선거용으로 쥔 카드였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인적 쇄신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안을 내놓은 것을 ‘확장 카드’로 봤다. 중도로의 세력 확장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10일 새누리당이 제정안 공청회를 가졌고,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 경제’라는 것이 소규모 공동체의 자급자족, 상호부조의 경제적 활동임을 뜻할 때, 누가 봐도 중도 표심 잡기로 해석된다는 이야기였다.
친박계 중진 의원은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무공천을 철회한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안 공청회는 새 정치에 실망한 무당파를 유인하기엔 안성맞춤”이라며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청와대에 관련 수석비서관까지 생기면 견고한 보수 지지층에다 안철수 대표에게 실망한 중도층까지 포섭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가에선 BH의 지방선거 지원 카드가 쓰일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로 ‘새정치 장송곡’이 울리면서 ‘잘하면 승리’에서 ‘못해도 압승’이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새누리당에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두 번의 헛발질을 반전 기회로 봤다는 후문이다. 그 하나는 무공천과 관련해 대통령의 입장을 듣겠다며 청와대를 찾아가 면담요청을 했을 때이고, 하나는 당원과 국민여론조사로 무공천 당론을 재결정한다고 했을 때라고 한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만약 안 대표가 청와대를 찾지 않고 국회 본청에서 단식 투쟁에 뛰어들거나, 삼보일배에 나섰다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선 심한 압박이 아니었겠는가. 또 무공천 여부를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연계했다면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안 대표에 대한 측은지심이 그의 지지를 더욱 끌어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안 대표는 아직 영글지 못했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다 ‘똥볼’을 차는 것이다. 정가에선 새누리당의 진짜 적은 새누리당이라 평가했다. 뜬금없이 여의도연구원이 당권 주자 여론조사를 실시한 점,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란 소문이 나돈 점을 두고 우선순위도 없는 당의 우왕좌왕을 비판하는 인사가 많았다. 지방선거에 올인해야 할 당의 중진들이 차기 당권에 목을 매면서 ‘마음은 콩밭에 있음’을 드러내면 이길 싸움도 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