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으로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현재까지 ‘고시 3관왕’ 출신의 변호사는 총 13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는 강 아무개 씨(47)도 포함돼 있는데 그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탄광지대인 전남 화순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강 씨는 가난한 집안사정을 비관해 학창시절부터 가출을 반복했다.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공부에 관심을 가졌으나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또 한 번 좌절했다. 하지만 상업고등학교라 자연스레 컴퓨터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계기로 삼성그룹 고졸 공채에 합격했다.
안정된 삶이 눈앞에 그려졌으나 강 씨는 고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1년 사표를 던졌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강 씨는 현재의 아내에게 청혼을 하며 고시 공부를 선언했다. 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학업과 고시 준비를 병행했다.
강 씨는 당초 4년을 목표로 고시 공부에 돌입했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모조리 포기한 채 고시반에 틀어박혀 살았지만 합격은 멀기만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첫 딸이 태어나고서야 “이래서 안 되겠다”고 생각한 강 씨는 행정고시에도 도전했는데 1년여 만에 덜컥 합격해버렸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한 강 씨는 또 한 번 도전을 다짐했다.
문제는 경제적인 부담이었다. 그 사이 둘째 딸까지 태어나 부인의 벌이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됐고 1997년부터 강 씨도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사로서 그의 인기는 기대이상이었다. 강 씨가 맡은 형사소송법 분야에서는 나름 유명세도 탔다. 강사의 길을 선택하면 억대 연봉도 기대할 법했지만 그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고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이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실력 점검 차원으로 법원 행정고시에 응시했다가 합격하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과거 일반 행정고시 합격 때처럼 꿈을 위해 사법시험에 계속 도전하고 싶었으나 부쩍 자란 아이들을 위해 현실을 택한 강 씨. 하지만 연수 도중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와 2차 준비를 시작했다. 불행히 그해 2차에서는 떨어졌으나 마침내 2000년, 고시 공부를 선언한 지 9년이 넘어서야 ‘사법시험 합격증’을 손에 쥐게 됐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변호사가 된 강 씨는 출발부터 화려했다. ‘고시 3관왕’으로 각종 언론에 소개되는 한편 고시생들 사이에서도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널리 알려져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손꼽혔다. 실력도 좋아 수년 전까지만 해도 변호사 50여 명이 소속된 대형 로펌에서 일했는데 그의 밑에만 변호사 5명이 있을 정도였다.
강 변호사 프로필.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강 씨의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변호사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 2012년 3월 강 씨는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공사 지연으로 입주가 늦어졌다”며 시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맡아 승소했다. 덕분에 시행사로부터 보상금과 이자 명목으로 4억 9000만 원을 받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강 씨는 이 돈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해버렸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들통 날 일임을 변호사였던 그가 모를 리 없었을 텐데 말이다.
당시 강 씨가 근무하고 있던 A 법무법인은 뒤늦게야 그가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회사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A 법무법인 관계자는 “돈을 갚아주고 권고사직 시켰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강 씨가 우리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것은 맞으나 행신동 아파트 소송 이후 내부 사정으로 제명된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회사에서 강 씨의 범행을 알았을 땐 그는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회사 이름으로 소송이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에 뒷감당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금전적인 피해보다 로펌의 생명인 신뢰를 잃어 명예가 실추될까 걱정이다. 우리도 피해자”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 섣불리 깊은 얘기를 할 순 없다. 강 씨에 관한 정보는 재판이 끝나면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A 법무법인은 강 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강 씨는 앞서의 횡령 혐의 외에 사기 혐의도 받고 있다.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주식 지분을 놓고 고향 후배들을 부추겨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낸 것. 강 씨는 수차례에 걸쳐 후배 2명으로부터 3억 5000만 원을 받아냈으나 실제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후배들은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고 강 씨가 이에 답하지 않자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아 수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지난달 27일 지인의 집에 있던 강 씨를 붙잡았다.
하지만 강 씨가 경찰 조사에서도 돈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은 상태다.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강 씨가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어 돈을 왜, 어디에 썼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고향 후배들의 진술에 따르면 강 씨가 도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강 씨의 계좌추적과 동시에 출입국 기록도 살펴보고 있는데 마카오,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를 자주 드나든 것으로 밝혀져 어떤 이유로 방문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강 씨가 전세 보증금조차 없어 집에서 쫓겨나 부인과 딸 두 명도 함께 지인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부유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고시 3관왕’ 타이틀을 무기로 유명로펌에서 돈 잘 벌던 강 씨가 왜 갑자기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현재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강 씨의 후배들이 경찰에 ‘그가 도박을 한 것 같다’는 진술을 했고, 전세보증금도 없어 집에서 쫓겨난 점 등을 보면 강 씨의 몰락에 ‘도박’과 관련된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고시 3관왕’이자 늦깎이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강 씨의 ‘성공스토리’ 마지막 페이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범죄로 막을 내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김태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