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선>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현지 선교사의 안내로 이슬람 국가에 선교 봉사를 떠난 8명의 한국인이 현지 이슬람 반군에 피랍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다 겉으로만 선교사일 뿐 돈 벌기에 급급한 세속적인 인물의 회개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이 감독뿐 아니라 다수의 출연자들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만든 영화임을 분명히 밝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 종교 영화는 아니다. 종교 자본으로 종교인들이 만든 영화가 아닌 독립 영화다. 이 감독 역시 종교인이 아닌 거장 감독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게다가 주연 배우 오광록은 기독교인도 아니다. 영화가 그리는 큰 줄기는 분명 기독교적인 관점에 충실하지만 극한 상황에 내몰린 9명의 피랍 한국인의 심적 변화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놓고 볼 때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세속적으로 변질된 선교사, 믿음이 없는 장로, 다정한 부부로 보이지만 실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미 이혼을 결심한 부인, 다정한 남편이자 충실한 교인으로 보이지만 실은 불륜 대상인 여성 신도와 함께 선교를 떠난 남성, 불륜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등 선교를 목표로 현지를 찾은 8명의 한국인과 현지 선교사는 모두 인간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이런 나약한 인간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심리 변화를 일으키며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다. 이런 갈등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진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국내 여론이 피랍된 샘물교회 교인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댓글을 통해 피랍된 한국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 여론과 피랍된 이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목사들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74년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스타감독이 됐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메가폰을 내려놓았던 이 감독은 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컴백하면서 사실주의 기법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 감독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은 영화 <시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종교적인 영화에 그칠 수도 있었던 영화 <시선>은 이 감독의 사실주의 연출 기법을 만나면서 한결 완성도 높은 영화로 거듭났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기독교인이라면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 ‘순교와 배교 사이에서의 결정’은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느껴봤을 고민일 것이다.
2.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 등 심리적인 측면이 강조된 영화를 즐기는 영화팬이라면 추천한다.
3. 오광록의 팬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신들린 듯한 오광록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주도한다. 심지어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인 오광록의 회개 장면에 대해 이 감독은 “가장 고민했던 장면인데 결국은 아무런 별도의 장치 없이 오광록의 연기 하나로 최고의 장면을 완성했다”고 말할 정도다.
말까
1. 흥미진진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겐 추천하기 힘든 영화다.
2. 종교적인 색채가 강조된 영화를 꺼리는 관객에겐 비추다.
3. 할리우드 영화 <캡틴 필립스>를 재밌게 본 이들에겐 비추, 덴마크 영화 <하이재킹>을 재밌게 본 이들에겐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