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봉공개 이후 수원 삼성에 대한 모기업 삼성전자의 지원액이 크게 줄었다. 수원 삼성이 3월 30일 부산과의 경기에서 1 대 0으로 승리한 뒤 팬들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 삼성
그리고 올해 각 구단 평균 연봉은 물론이고, 봉급 상위권 선수들의 개별 연봉까지 함께 공개하기로 내부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프로연맹의 연봉공개 추진에 클래식(1부 리그)과 챌린지(2부 리그) K리그 구단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선수들의 몸값에 거품이 얼마간 끼어있다는 것에는 많은 구단들이 공감하지만 결국 축구 시장 전체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 투명성 높이는 건 좋지만…
사실 연봉공개의 취지 자체는 굉장히 좋다. 명분도 확실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프로축구의 만성 적자 구조를 해소하고 스포츠 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연봉을 투명하게 공개해 각 구단들이 안고 있는 선수 인건비의 거품을 제거, 이를 구단 마케팅과 관련 상품 사업, 유소년 시스템 투자 등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연맹 정책권자들은 연봉공개를 통해 구단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영 효율화까지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체질개선이 곧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여긴다. 전임 집행부(정몽규 체제)에서 기획하고, 현 집행부(권오갑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1차 연봉공개가 이뤄진 지 1년여가 흐른 지금, 프로축구 시장은 상당히 꺾여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보다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도 축구계 곳곳에서 “시장이 완전히 죽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실제로 그동안 선수 이적시장에서 좋은 재목들을 영입, 전력 보강을 꾀하면서 ‘큰손’ 역할을 해온 많은 클럽들이 선수단에 선뜻 자금을 투자하는 데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구단이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다.
이들 구단은 얼어붙은 축구시장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수원은 지난해 공개된 구단별 평균연봉에서 1위를 했다. 모기업 삼성전자(현재는 제일기획) 내부에서조차 “평균 연봉 1위는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투자=성과’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기업 논리로 볼 때 최근 기대 이하의 성과를 냈던 수원 블루윙즈 축구단의 모습을 1등 주의를 표방하는 모기업에서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수원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도시(수원) 인구대비 가장 열성적이고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한데다 오랜 시간 좋은 선수들을 충실히 영입하면서 K리그 대표 리딩 클럽의 역할을 비교적 잘해왔기 때문에 ‘수원 삼성’이란 브랜드가 축구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봉공개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에서 투자를 줄이더니(항간에서는 100억 원 가까이 삭감됐다고 알려진다) 조금은 낯선 ‘그저 그런’ 평범한 구단으로 바뀌었다.
포항의 경우는 수원과는 조금 다르지만 역시 모기업의 살림살이가 빡빡해지면서 어렵게 선수단을 꾸려가기는 마찬가지다. 아주 적다고는 할 수 없는 33명의 등록인원을 채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 나설 만한 선수들의 숫자는 22명 안팎이다. 11명은 베스트, 11명은 백업 자원, 나머지 인원들은 성장군으로 분류해서 관리하고 있다. 물론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외국인 선수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모기업이 SK인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우, 작년 시즌 정규리그가 끝난 뒤 순위에 따라 별도 홈 앤드 어웨이를 진행하는 스플릿시스템 라운드에서 그룹B(하위리그)로 내려앉았다가 시즌 도중에 지원금이 줄어드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기업 구단들만이 울상을 지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도·시민구단들은 기업 구단들보다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 훨씬 많았다. 모기업이 없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도·시민구단들은 직접 선수들을 키워 쓰거나 좋은 가격에 팔아서 재정을 충당했다. 그것이 이들 구단의 기본적인 생존전략이었다. 따라서 선수들에 책정된 몸값에 거품이 사라지면 선수시장이 보다 합리적으로 돌아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올 초 겨울 선수 이적시장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돈을 써야 할 구단들이 제때, 또 제대로 돈을 쓰지 않으면서 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더욱 어려워진 형편 이외에도 연봉공개를 반대하는 이유가 또 있다. 선수들 간의 위화감 조성이다. 연봉이 공개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물론 기업구단들 간의, 또 도시민구단들 간의 위화감 조성 역시 불편한 부분이다.
‘현대가’ 형제 구단인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는 예전과 다름없는 투자의 기조를 유지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북과 울산이 그럭저럭 정상적인 투자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들이 외치는 논리는 간단하다. 자금이 줄어들면 좋은 선수를 사들일 수 없고, 이는 결국 축구시장 전체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연맹의 연봉공개 취지처럼 역시 이해되는 측면이 크다.
중국 프로축구가 선수 영입에 큰돈을 투자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FC 서울이 ACL F조 2차전 베이징궈안과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위). 아래는 포항스틸러스가 ACL E조 1차전에서 세레소오사카와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 사진제공=FC 서울,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 반대한 구단들 입장은
대부분 구단들은 선수단의 몸값을 합리적으로 맞춰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각 구단들의 내부 구조도 함께 고려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렇다.
모 유력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프로연맹이 제시하는 연봉공개 논리는 나쁘지 않다. 다만 연봉에 끼인 거품을 줄여, 다른 산업에 투자하자는 건 기업 구조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사실 대부분 기업들은 인건비와 마케팅비를 철저히 구분한다. 선수 인건비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마케팅 비용이 절대 늘어날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
또 다른 기업 구단 관계자 역시 “그냥 축구를 좋아하던 팬일 때는 ‘왜 내가 좋아하는 구단에서는 라이선스 상품을 이토록 허술하게 만들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때론 제대로 못 뛰는 선수들의 봉급을 줄여서 상품 강화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희망했던 구단 직원이 되고 나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에서 주는 지원금은 모든 것들이 세분화돼 있다. 인건비는 인건비, 마케팅 활동비에는 마케팅 활동비라는 거다. 더욱이 마케팅 비용에서 최대한의 상품을 창출해 얻은 수익을 다시 마케팅으로 투자할 수도 없다. 인건비를 줄여서 마케팅 강화를 위해 쓰거나 유소년 육성에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A라는 분야에서 돈을 아껴 B라는 분야에 투자할 수는 없으며 B라는 분야에서 C라는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에 문제의 소지는 또 있다. 선수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다. 유감스럽게도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거의 전부가 선수들의 연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에서는 현지 언론들을 통해 선수 몸값이 알려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치다. 그러면서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이는 물론 한국 축구도 비슷하다. 이동국(전북) 등 몇몇 대어급 선수들의 몸값은 자세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혹여 그렇다고 해도 연봉이 정말로 공개되는 것과 추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연봉공개를 찬성하는 일각에서는 “프로 선수도 공인이기 때문에 몸값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연예인 등 다른 분야에서의 공인들이 협회 등 특정 단체 차원에서 회원 개인의 1년 연봉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연봉공개가 이뤄진 선수들이 이를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반발한다면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FIFA에 제소하거나 법적 대응에 돌입할 소지도 농후하다. 일단 FIFA에서는 선수들의 권익과 권리를 대단히 중요시 여긴다.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비록 전부는 될 수 없을지라도 축구계가 어느 정도 가닥이 모아지고,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때 연봉공개를 해도 늦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K리그 몇몇 구단들이 프로연맹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사전에 충분한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측면도 분명 있다. 지난해 프로연맹이 이사회 의결사항이라며 연봉을 일부 공개했던 시기는 국가대표팀의 A매치와 맞물렸다. 애초부터 연봉공개에 반대의 뜻을 표명해온 구단들은 축구계 시선이 대표팀으로 향할 때 민감한 안건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비판을 가했다.
# 안팎으로 치이는 프로축구
4월 2일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마친 뒤 전북 최강희 감독은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중국 프로축구의 성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이 나온 직후였다. “중국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축구단에 대한 투자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중국 축구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한국 축구다. 아직 대표팀 간의 대결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대표팀 전력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프로축구에서는 중국의 성장세가 대단히 놀랍다. 시진핑 국가주석에 잘 보이기 위해 축구단을 운영하려는 신흥 부호들이 많아지면서 한때 별 볼일 없던 중국 프로축구는 어느새 아시아의 맹주 자리까지 올랐다. 선수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수 백억, 수 십억의 돈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용병들을 보유한 만큼 성과도 나왔다. 지난해 광저우는 최근 이어진 K리그 강세를 깨고 당당히 아시아 정상을 밟았다.
연봉공개가 투자 위축의 모든 원인이 될 수 없고, 그로 인한 축구계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경기력 향상 및 유지를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프로연맹도 상당수 구단들이 반대하는 연봉공개를 강행하려기보다 지난해 1차 공개 이후의 효용성을 좀 더 확실히 하고, 소통을 강화해 갈등의 폭을 줄일 필요도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축구와 타 스포츠 연봉 비교해보니 야구보다 높다고? 시장이 다르잖아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선수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 건 축구가 유일하다. 최고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는 물론, 프로배구와 프로농구 모두 선수 개인 연봉을 공개하고 있다. 2012년을 기준으로 K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1억 4609만 원이었다. 이 중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1억 1405만 원. 프로농구는 1억 4858만 원(2012~2013시즌 기준)으로 축구보다 높았고, 프로야구는 2013년 전반기 기준으로 1억 3815만 원이었다. 남자 프로배구는 1억원이 채 안 되는 9300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스포츠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몸담을 수 있는 행선지 범위 차이다. 축구는 철저히 국제 종목이다. 지구촌 대부분 국가들이 축구를 한다. 단순히 아시아권(일본, 중국, 중동 등)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북중미, 오세아니아까지 광범위하다. 이른 바 시장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선수를 원하는 수요도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몸값이 상승했다는 측면이 있다. 무작정 거품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야구와 농구 등 다른 종목은 축구보다 즐기는 국가가 적다. 많은 축구인들은 “축구는 국내 규정보다는 국제 규정에 발맞추는 게 더욱 중요하다. 세계적인 추세가 연봉공개를 하는 것이라면 따라야 하겠지만 굳이 남의 패는 모르면서 우리의 패만 들춰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