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 임 씨와 친부 김 씨(오른쪽 사진)가 선고공판이 열리는 대구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친부 김 씨도 딸 사망판정 받는 날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4일 새벽, 김 아무개 양(9)이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병원으로 실려 왔다. 새벽에 집에서 구토를 하다 쓰러졌다는 김 양은 도착당시 의식과 맥박이 거의 없는 심정지 상태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16일 김 양은 사망판정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김 양의 사망 이후 알 수 없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김 양의 친아버지(38)는 김 양이 사망판정을 받는 날에도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었다. 병원 측의 신고를 받고 영안실에서 김 양의 몸을 확인한 경찰은 김 양의 몸 곳곳에 있는 상처들을 발견했다. 단순히 넘어져서 생기기 어려운 상처와 멍들이었다. 김 양의 등에는 화상 자국이, 턱에는 찢긴 상처가 있었다. 멍으로 가득한 왼쪽 팔은 제대로 펴지지도 않을 만큼 굽어있었다. 김 양이 잦은 배탈로 복통이 있었다는 김 양 아버지와 계모 임 아무개 씨(35)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망한 김 양은 복부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또 외부의 충격에 의해 복막이 찢어지고 장이 파열됐을 정도로 심한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경찰은 숨진 김 양의 친언니(12)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김 양의 언니가 경찰조사에서 “평소 동생과 자주 다퉜고, 사건 당일도 인형을 뺏기기 싫어 동생을 발로 찼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계모 임 씨 또한 숨진 김 양과 김 양의 언니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김 양이 사과를 하지 않자 배를 때린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결국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임 씨를 구속하고, 김 양의 언니를 소년법원으로 이첩했다.
그런데 지난 3월 공판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숨진 김 양의 언니가 “계모가 동생을 폭행했다. 나는 동생을 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김 양의 언니가 뒤늦게 고백한 계모의 만행은 충격적이었다. 계모 임 씨는 김 양 자매와 함께 살았던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숨진 김 양을 10차례 이상 학대했다. 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계모 임 씨는 정서적인 학대도 서슴지 않았다. 언니를 과격하게 혼내고 나면 그 자리에서 동생을 예뻐해 주고 얼마 후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매에게 ‘충성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 계모 임 씨는 말을 듣지 않으면 청양고추를 먹이고 뜨거운 물을 붓는가 하면, 훈육의 일종이라며 자매를 아파트 계단에서 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계모 임 씨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니 김 양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친아버지인 김 씨가 동생 김 양이 장 파열로 숨지는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어 첫째 딸에게 보여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계모 임 씨 측은 충격적인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임씨의 변호를 맡은 김주원 국선 변호사(35)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 씨가 언니 김양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는 내용은 공소장 어디에도 없다”며 “김 양의 일방적 진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김 양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해 언니에게 보여줬다는 내용도 공소장에는 없으며 결심공판까지 진행되는 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임 씨의 아동학대 사실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난 10일 검찰은 ‘세탁기 학대’와 ‘동영상 학대’ 사실을 추가로 기소하기 위해 친아버지인 김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진실 규명에 들어간 상황이다.
한편 김 양 자매의 비극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어린 김 양 자매는 2007년 부모가 이혼한 뒤 5년간 고모 밑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12년 5월,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김 양 자매는 새엄마 임 씨와 임 씨 소생의 친딸(10)과 함께 살게 됐다.
동네사람들은 물론 친모에게까지 ‘착한 계모’로 알려졌던 임 씨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데는 5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섯 식구가 된 지 불과 5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2년 10월에는 김 양의 언니 담임이 김 양 언니의 몸에서 상처와 멍자국을 발견하고 경북 구미시의 아동보호센터에 신고를 했지만 보호센터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3년 2월에는 숨진 김 양의 담임도 김 양의 온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보건복지부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이후 김 양은 순천향대구미병원에 입원한 채로 구미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김 양의 부모도 4회에 걸쳐 아동학대 조사를 받았지만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렇게 됐다. 내가 팔을 잘 잡아주지 못했다”는 계모 임 씨의 해명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면서 상습학대가 없다고 판정받았다.
학대가 자행되는 동안 김 양 자매는 지속적으로 외부의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에는 김 양의 언니가 “계모에게 맞았다”며 경찰 지구대에 직접 신고를 하기도 했으나 부모의 진술 이후 말을 번복하면서 다시금 계모 임 씨의 ‘악행’은 묻히게 됐다.
심지어 한 달 뒤인 7월에는 계모 임 씨의 남동생마저 경찰에 아동 학대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김 양 아버지의 변명만 듣고 철수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계모로부터 ‘시끄럽다’는 이유로 30분간 폭행을 당한 김 양은 결국 장 파열로 목숨을 잃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계모 임 씨는 뻔뻔했다. 숨진 김 양의 언니가 경찰 조사를 받고 온 날에는 경찰에서 무엇을 물어봤는지 어떻게 대답했는지 물은 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어김없이 언니 김 양을 폭행했다. 계모 임 씨는 경찰 조사 이후 이웃주민과 종교 단체를 통해 자신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까지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김 양의 아버지와 계모 임 씨는 김 양이 숨진 1주일 후 군청을 찾아와 장례비를 타내려하고 고모가 모아둔 김 양의 예금을 찾으려 했던 사실도 드러나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변호인인 이명숙 변호사는 “계모의 강요에 의해 김 양 언니는 자신이 범행한 것처럼 허위진술을 했다. 그러나 친권이 생모에게 넘어가고 고모가 도와주면서 김 양 언니가 심리적 안정을 찾아 사건 진상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과 언니 김 양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지난 3월 18일 계모 단독 범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뒤늦게 언니의 진술을 받아들인 검찰은 계모 임 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하고, 친아버지 김 씨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여전히 계모 임 씨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명숙 변호사는 “현재 언니 김 양은 고모가 보호하고 있다. 동생 사망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새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강요받은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심하다. 경찰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김 양을 곧바로 격리했다면 보다 빨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