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돔 등 윤락가의 필수품을 독점 공급하며 부를 축적하는 조직폭력배들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 왼쪽은 한 윤락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
이제 윤락가 조폭들이 사창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나, 보호비 갈취를 일삼던 행태는 옛말. 대신 그들은 유통회사 간판을 내걸고 어엿한 기업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콘돔, 화장지, 물티슈 등을 업소에 독점 공급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이른바 ‘콘돔조폭’이다.
윤락가 일대에 ‘콘돔조폭’이 기생하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인 행세를 하면서 아예 사창가 주변의 상권과 돈줄을 장악하고자 하는 행태는 최근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이 업소들에 공급하는 품목은 콘돔을 비롯해 화장지, 물티슈, 생수 등 윤락 영업을 하면서 꼭 필요한 소비품들. 예전에는 윤락여성들을 상대로 의류나 화장품 등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강매하다시피했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윤락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또한 콘돔 등의 물품들은 일반 소비자가에 비해 큰 차이 없이 공급되고 있어 얼핏 불법성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콘돔 10개들이의 가격은 4천∼6천원선. 하지만 대부분 판매가가 들쑥날쑥하고 품질에 따라 가격차가 큰 품목들이라 정상가에 팔아도 절반 이상 남는 장사라는 것이 이곳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다 워낙 사용량이 많고 독점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한 달에 몇천만원의 수익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
한 경찰 관계자는 “한 업소에 5명 정도의 윤락녀가 한 명당 평균 콘돔을 하루 5개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청량리의 경우 1백40여 개 윤락업소가 있으니까 한 달에 대략 4천만원 이상의 매출이 나온다”며 “콘돔 한 품목만으로도 월 2천만원 정도의 순이익을 거뜬히 낼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콘돔조폭 사무실의 경비 유지는 물건 구입비만 제외하고는 다른 부대비용이 거의 없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청량리 A유통회사의 경우 4∼5평 남짓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스무 살이 갓 넘은 조직의 ‘막둥이’ 혼자서 모든 업무를 담당해왔다고 한다. 급여 1백20만원이 그나마 큰 지출비라고 한다.
판매방식도 너무나 간단하고 손쉽다. 이들은 업주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업소 중간마담을 통해 윤락녀들에게 직접 파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물건을 건네주고 ‘△△호 B마담 콘돔 ○○○개’식으로 장부에다 매상을 기재하고 월말에 현금 결제를 받기만 하면 된다. 물건값은 해당 윤락녀가 소모품 비용으로 지불한다. 사업이랄 것도 없는 그냥 ‘손짚고 헤엄치기’식의 합법성을 가장한 돈벌이가 되는 셈.
강매를 했다는 증거나 증인을 찾기가 어려워 단속근거를 마련하기도 힘들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고충이다. 이들은 실제 해당 물건을 사용하도록 종용하면서 물품 구입을 꺼릴 경우 장사를 방해하는 등 일종의 보복행위를 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피해자가 나서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업주나 윤락녀 모두 조용히 장사하기를 원할 뿐, 그 생리상 괜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며 “설사 해코지를 당했다고 해도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물품 사용료를 실질적으로 지불하는 윤락녀들도 대부분 한 달에 몇십만원 정도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청량리에서 만난 한 윤락녀는 “어차피 사용해야하는 거라면 얼마 들지도 않는 돈 때문에 이런저런 말이 나오게 할 필요 있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콘돔조폭들은 콘돔 등의 물품 판매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의 최대 돈벌이는 역시 ‘카드깡’이었다. 식당이나 노래방 등으로 등록한 유령업소를 통해 카드로 결제된 윤락대금을 현금으로 바꿔주고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수법이 최근 성행하고 있다.
대형 윤락업소의 경우 한 달에 움직이는 뭉칫돈이 1백억원은 족히 넘을 것으로 예상돼 이를 대상으로 하는 ‘카드깡’ 시장 역시 엄청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아무나 ‘카드깡’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윤락가 일대의 콘돔조폭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깡’은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뒤탈도 훨씬 적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지적이다.
‘카드깡’ 수수료는 사실상 카드 결제시 윤락 고객이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업주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 ‘카드깡’을 해주는 입장에서야 당연히 고액의 수수료를 벌어들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는 셈.
수수료는 18%선이라고 한다. 이렇듯 서로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갈수록 횡행하고 있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경찰의 표적 수사에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사업인 셈이다.
윤락가 인근에 식당이나 단란주점 등을 직접 차려놓고 업주나 윤락녀를 상대로 매상을 올리는 행태도 콘돔조폭의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업소를 돌며 ‘XX형님이 OO단란주점(식당)을 오픈했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려 놓으면 ‘보호를 받고 있는’ 업주나 윤락녀들은 그 가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종의 ‘상납’인 셈이다. 실제 이런 식의 윤락업소를 직접 운영하는 폭력배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자신이 직접 업주로 나서기보다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들 중 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안성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