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 부르며 어머니 생각”
[일요신문]
강철
트로트메들리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트로트메들리계의 국민가수’ 강철이 2004년에 발표한 데뷔곡 ‘고향 가는 길’(김기호 작사·작곡)의 노랫말이다. 오래전 상경해 고향과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는 노랫말 속 주인공과 달리 강철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다.
“서울 서대문구 정동에서 태어났어요. 서울 태생이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없을 것 같지만 저도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정동이 그립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고향은 평안남도인데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어느덧 중년이 됐지만 어린시절 여자 꽤나 울렸을 훈훈한 미남인 건 여전하다. 학창시절 착실한 ‘범생이’였을 것 같다고 운을 떼자 그가 손사래를 친다.
“육상 특기 장학생으로 학비를 안 내고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질이 나쁜 학생이었습니다. 조직에 가담한 형님들을 모시며 서로 다른 구역을 쟁취하기 위해 패싸움도 여러 번 했지요. 그러면서도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구두닦이를 해서 번 돈으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학교생활에 큰 재미를 못 느꼈는데 유독 체육시간과 음악시간만 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어요. 다 가수가 되려고 그랬나 봅니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 그의 꿈은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상비군이었다. 실력이 출중해 전국체전 출전 티켓도 어렵지 않게 딴 그였다. 결국 운동을 포기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지만 막상 운동을 그만두고 나니 운동 다음으로 그가 좋아하던 노래가 새로운 인생을 열어줬다.
“꿈이 자연스럽게 운동선수에서 가수로 변하더군요. 그 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한번은 가수가 되려고 작곡가를 찾아갔다가 데뷔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몽땅 갖다 줬는데 그게 다 사기더라고요. 이후엔 밤무대나 지방무대를 돌며 노래했는데 극심한 생활고가 계속돼 잠시 가수의 꿈을 접고 회사를 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수의 꿈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아내는 가수가 되겠다는 그를 뜯어말렸다. 젊은 시절 가수의 꿈을 쫓던 그에게 안정된 수입이 없어 내내 고생만한 아내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가 평생 그토록 바라던 가수의 꿈을 이루게 됐을 때 아내는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철은 “이 인터뷰를 통해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트로트가수가 된 특별한 동기는?
▲1999년 우연한 기회에 출전한 전국노래자랑에서 1년여에 걸친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결선 까지 올라가 대상을 수상하고, 그때 받은 상금 200만원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서 가수 원미연 씨의 ‘이별여행’을 작곡한 작곡자 김기호 님을 만나서 ‘트로트 하이웨이’라는 메들리 음반을 먼저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앨범이 ‘홈플러스 중동점’에서만 10만장이 팔렸다. 이후 홈플러스에서 팬사인회를 한 뒤에는 판매량이 더욱 늘어나 신인가수의 메들리음반으로는 이례적인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때부터 메들리음반을 몇 차례 더 발매한 뒤 김기호 작곡가님이 내게 정식으로 데뷔할 기회를 주시려고 무료로 음반을 만들어주셨다. 그게 바로 2004년에 발표한 1집 ‘고향 가는 길’이다.
-데뷔 후 달라진 점은?
▲데뷔하기 전엔 방송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무명가수의 서러움이 있었으나, 데뷔하고 난 뒤 내 이름이 방송에서 불려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 방송에서 사회자가 ‘‘가수 강철’입니다’ 하고 소개할 때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본인 목소리의 무기는 뭔가?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많은 고생을 해서 그런지 애잔하고 호소력 있는 감성이 내 목소리의 강점인 것 같다.
-데뷔 이후 힘들었던 점은?
▲가수 데뷔 이후 감사한 분들의 여러 도움으로 힘들기보단 감사할 일,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도 헤어스타일을 꽁지머리 스타일로 바꾼 후 꽁지머리의 강한 이미지 덕에 이름보다 꽁지머리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꽁지머리, 친근한 별명이 생겨 좋다.
-그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를 떠올린다면?
▲다 인상 깊다. 2011년 KBS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로 섰던 무대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멘토로 삼고 싶은 선배가수는?
▲나훈아 선배를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왔다. 그분의 음악을 듣고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뵙고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분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었다.
송기평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