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생존자들에 대한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세월호 침몰 사건 가족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이준석 선장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대처방식이다. 이 선장은 오전 8시 35분여께 선체가 기울기 시작하자 8시 55분경 제주VTS에 통보했다. VTS(Vessel Traffic Services)는 선박통항정보서비스를 말하는데 이 선장은 2시간 거리의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긴급상황을 알렸다. 5분이 지난 뒤 제주VTS는 “인명들(사람들)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 모르니 준비해주세요”라고 알렸다. VTS의 주요임무 가운데 하나는 ‘선박의 해양안전사고 및 긴급상황 발생시 신속한 초동조치 및 전파’다.
VTS는 각종 해난사고를 많이 경험한 베테랑들이 직접 초동조치를 내리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VTS의 ‘지시’는 사건 초동 상황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 선장은 최초의 이 중요한 ‘지시’를 흘려듣고(또는 알아도 무시한 채) 퇴선에 대한 준비나 전파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고 후 30분 동안의 ‘골든타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어긋나고 있다.
이 골든타임에 이 선장이 제주VTS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승객들에게 알리고 퇴선에 대한 준비부터 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귀중한 초기 30분의 ‘골든타임’ 동안 배에 ‘사고’가 났다는 그 어떤 정보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그냥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하염없이 대기하고 있다가 큰 화를 당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세월호 이준석 선장. 오른쪽은 이준석 선장이 탈출하는 장면으로 온라인상에서 추측되고 있는 사진. 연합뉴스
그 뒤 선장의 모습은 오전 11시 16분께 세월호에서 같이 빠져나온 여러 명의 선원과 함께 선착장에 내리는 모습이 한 언론사 영상에 잡혔다. 그는 남방에 니트까지 걸친 깔끔한 옷차림으로 승객인 척 구조대원들로부터 ‘안내’를 받기도 했다. 물에도 젖지 않았는지 담요도 덮지 않은 채 매표소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뒤 그의 모습은 병원에서 또 포착됐는데 바닷물에 젖은 5만 원짜리 두세 장과 1만 원짜리 10여 장을 치료실 온돌침상에 말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큰 분노를 자아낸 바 있다.
그런데 왜 이 선장은 배 경력이 40년이나 되면서 ‘퇴선’에 대한 준비나 지시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현재 이 선장은 “퇴선명령을 내렸다”며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먼저 이 선장이 순식간에 배가 위기상황에 닥치자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의 패닉상태에 빠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가 40여 년을 배에서 생활해온 사람이라고 볼 때 너무 안이한 해석이다. 그는 한때 배가 난파돼 사지에서 돌아온 경험을 가진, 어떤 의미에서는 해난사고의 ‘베테랑’이었다.
이 선장은 20대 중반에 우연찮게 배를 타게 된 후 20년 동안은 외항선을, 최근 20여 년은 여객선 선장으로 활동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2004년 1월 1일자 <제주투데이>에 소개가 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처음 탄 배가 원목선이었는데 일본 오키나와 부근 해역에서 배가 뒤집혀 일본 자위대가 헬리콥터를 이용해 구출해줬다. 그때 만일 구출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그의 심경의 한 단면을 보면, 한번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 그가 또 다시 그런 위험이 닥치자 이성을 잃고 ‘묻지마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해석해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 선장은 탈출할 때 ‘부하’들까지 데리고 유유히 배를 빠져나왔다. 패닉에 걸린 상황이라기보다 자신의 목숨만 챙기려는 극단적인 이기심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배의 침몰 전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이 선장이 대피조치를 취하지 않고 ‘갑자기’ 배를 떠날 수밖에 없는 모종의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여객선 세월호에서 ‘공식적으로’ 이상 징후가 감지되거나 신고된 시각은 8시 55분경이다. 그런데 세월호가 이미 8시를 전후해 배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증언도 있다. 구조된 선원 송 아무개 씨(20)는 “승객 배식이 한창 이뤄지고 있던 때부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오전 8시 조금 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근 해역에서 작업하던 어민들의 목격담도 이를 뒷받침한다. 진도군 조도면 주민 이 아무개 씨(48)는 “미역 양식 때문에 새벽 일찍 나갔는데 오전 8시 무렵 큰 배가 멈춰 있었다. 그렇게 큰 배가 서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승객과 어민들의 목격담 등을 종합하면 세월호에는 외부에 위험이 알려지기 1시간 전부터 이미 이상징후가 있었던 셈이다. 선장 등 승무원이 이상징후를 조기에 감지했는지, 감지했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명확한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은 이 선장이 배가 침수되었거나, 또 다른 비상상황을 맞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동안 복원력 회복 등과 같은 필사의 응급조치를 취하다가 결국 8시 55분경 제주VTS에 SOS를 쳤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선장은 배의 응급처치를 위해 기진맥진했을 것이고, 승객의 안전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다 배의 침몰을 기정사실화 하며 탈출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퇴선조치 같은 승객 구조는 늦었다고 판단, 서둘러 ‘부하’들만이라도 함께 배를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본인으로서는 ‘나도 배를 복원시키기 위해 할 만큼 했다’고 치부하며 승객들을 뒤로한 채 탈출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 선장의 순간 판단도 ‘그가 제 정신이었느냐’는 의혹이 들 만큼 미숙하고 어리석었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돌발’이라는 신호와 함께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라고 한다. 선박상식에서는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탈출하는 것을 제일 먼저 배운다고 한다. 이것이 ‘어밴던십’(abandon ship:전원이함)이라는 비상탈출이다.
이 선장은 “배가 상당히 기울었는데도 왜 승객들에게 계속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당시는 조류가 상당히 빠르고, 수온도 차고…만일 구명조끼 없이 한 사람씩 퇴선하다 떠밀려갈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시 구조선도 없고 주위에 인명 구조하는 어선, 협조선도 없는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이 선장의 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밴던십’ 절차를 밟지 않고 그대로 ‘수장’되는 것보다 구명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게 더 생존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세월호엔 구명보트·구명뗏목 46개가 있었다. 승무원들이 핀을 뽑은 후 바다에 걷어차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팽창해 승객들을 태울 수 있는 장비다. 하지만 사고 후 제대로 작동한 것은 1개뿐이었다. 실종자 250여 명이 모두 탄다고 해도 2배 이상 수용인원이 남아있었다.
이 선장의 ‘정신 없는’ 대처는 계속된다. 그는 배가 침몰한 진도 앞바다에서 엉뚱하게도 제주도에 구조요청을 한 것이다. 특히 이 선장이 비상용 무전채널만 사용했어도 주변에 있던 선박이나 기관들이 동시에 침몰 상황을 알게 되면서 훨씬 빨리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고 당시 인근의 선박 선원은 한 인터뷰에서 “승객들 전부 다 뛰어내리게 해라, 그러면 우리가 전부 다 건져내면 되니까, 그렇게 말했는데 (세월호) 선장님이 정신이 없었는지 횡설수설하시더라고…”라고 밝혔다.
이준석 선장은 56명의 사망자와 240여 명의 실종자를 낸 최악의 대형 해난사고의 한 장본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전대미문의 ‘골든타임 탈출’이라는 미스터리가 거센 물살처럼 맴돌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