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 사고 발발 이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채 에어포켓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들에게도 한 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실종자 가족은 물론이고 전국민이 그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고 있는 만큼 실낱같은 희망의 끈은 절대 놓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영화 <원챈스>를 이야기하려 한다. 영문 제목 <One Chance>, 다시 말해 ‘한 번의 기회’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오페라 스타 폴 포츠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지만 거듭된 우여곡절 앞에서 자신의 꿈을 그냥 포기해버리려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절망의 순간, 그에겐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고 그는 이 기회를 붙잡고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소심한 성격으로 왕따를 당하곤 했던 폴 포츠(제임스 코덴 분)가 2007년 영국 ITV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해 우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폴 포츠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지만 소심한 성격과 부친의 반대로 그 뜻에 다가가지 못한다. 휴대폰 판매원으로 일하던 폴 포츠는 평생의 동반자가 될 줄리-앤 쿠퍼(알렉산드라 로치 분)를 만나게 되고 그의 격려에 힘입어 베니스 음악학교에 합격한다. 베니스 음악학교에서도 소심한 성격 탓에 늘 홀로 지내전 폴 포츠는 내부 콘테스트를 통과해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생일대의 기회를 붙잡는다.
그렇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한 폴 포츠는 파바로티에게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오페라 가수가 그렇게 소심해선 성공할 수 없다”는 혹평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줄리-앤 쿠퍼와 결혼한 뒤 출연료도 받지 못하는 작은 공연장에서 뮤지컬 <아이다>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지만 공연을 앞두고 맹장염으로 입원한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무대에 서지만 폴포츠는 결국 공연 도중 쓰러진다. 게다가 폴 포츠의 갑상선에선 양성 종양까지 발견된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질병은 치료했지만 과거의 목소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던 폴 포츠는 힘겹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은 후엔 다시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폴 포츠는 다시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약국 판매원이던 부인 줄리-앤 쿠퍼가 생계를 도맡지만 빚만 쌓여갈 뿐이다. 그렇게 오페라 가수의 꿈은 물론이고 평범한 일상마저 위기에 내몰린 폴포츠에게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바로 <브리튼즈 갓 탤런트> 출연이다.
소심한 성격의 그가 예선 무대에서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파바로티 앞에서도 소심한 성격에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르지 못한 폴 포츠 앞에는 영국 음반 기획자인 사이먼 코웰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다.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인 심사평을 내놓기로 유명한 심사위원이다.
그때 “파바로티가 틀렸다는 걸 보여줘! 당신을 사랑하는 카메론”이라는 부인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폴 포츠는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다. 참고로 부인이 자신을 카메론이라 지칭한 까닭은 연애 당시 이들이 서로를 브래드 피트와 카메론 디아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폴 포츠에게 진정한 한 번의 기회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아닌 부인 줄리-앤 쿠퍼와의 만남이다. 기자의 개인적인 느낌으론 영화를 보면서 사랑에 빠진 여성 캐릭터는 정말 오랜 만이다. 줄리-앤 쿠퍼 역할을 연기한 알렉산드라 로치는 사실 그리 예쁜 여배우는 아니다. 늘씬한 몸매라기엔 다소 뚱뚱한 편이고 얼굴 역시 정통적인 미인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영화에서 만난 여성 캐릭터 가운데에선 가장 사랑스러웠다. 다시 기자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로맨틱한 영화를 보고 이처럼 가슴이 떨린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다. 그만큼 줄리-앤 쿠퍼라는 캐릭터와 알렉산드라 로치라는 여배우는 사랑스러웠다.
폴 포츠는 줄리-앤 쿠퍼라는 여성을 만나 베니스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브리튼즈 갓 탤런트> 출연을 결심한다. 소심한 성격에 힘겨워하는 폴 포츠에게 그 장벽을 뛰어 넘도록 만들어 준 것 역시 줄리-앤 쿠퍼다. 이런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는 남성이라면 그 누구라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여성이 사랑스러워 보인 것일 수도 있다. 미혼 남성이라면 결혼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예쁜 여성만 찾기보다는 이런 여성을 만나는 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세월호 생존자들에게도 각자의 줄리-앤 쿠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간절함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버텨달라고 감히 부탁하고 싶다. 그렇다면 폴 포츠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처럼 구조에 나선 잠수부들이 반드시 당신들을 찾아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리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