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대입 수능이나 토익 등 각종 자격시험에서 대리시험 행위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조선시대에도 부정시험 행위는 있었으며,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과거가 소수의 권세가와 특정 계파의 독무대가 되면서 대리시험을 치러주는 거벽과 사수라는 직업이 등장했다. 글자 한 줄 안 쓴 권세가의 아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과거에 합격하고 정작 인재들은 거벽과 사수 노릇을 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직업은 시대의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필요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며, 그것은 곧 직업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정 시대의 직업들을 살펴본다면 그 시대의 사회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조선직업실록>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조선시대의 특이한 직업을 소개한다. 1부는 나라의 필요에 의해 녹을 주고 부렸던 공무원 같은 직업들이다.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어서 화재에 취약했던 한양에 세조 때 멸화군이라는 소방수가 등장했다. 북방정책을 폈던 조선 초기에는 체탐인이라는 첩자가 있었다. 억불정책의 희생자인 승려들은 국책사업에 동원돼 한증소를 운영하거나 시신을 거둬 묻는 일을 했다.
2부는 스스로 벌어먹고 살았던 특이한 ‘자영업자‘를 소개한다. 선조 때 잠시 민간에서 신문을 발행했던 기인, 인조 때 재판에 나선 변호사 외지부, 운종가에서 상인과 소비자를 이어준 ‘삐끼’ 역할로 먹고산 여리꾼,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생계를 이어간 재담꾼 등이다.
3부는 먹고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슬픈 사연의 직업들을 소개한다. 상가에서 대신 울어주는 곡비와 매를 대신 맞아주는 매품팔이를 비롯해 몰락한 양반가의 아녀자들이 종사했던 내외술집, 노비 사냥꾼인 추노객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우리의 기억에서 잊힌 조선시대의 직업들을 통해 교과서가 미처 담지 못한 조선의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정명섭 지음. 북로드. 정가 1만 4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