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고종과 메이지는 1852년생으로 동갑이다. 1863년 즉위한 고종은 그가 갖춘 개인적인 경륜이나 대내외적인 조건에서 메이지에게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1863년 당시 조선의 국력이 바다 건너 일본보다 그렇게 많이 약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즉위 후 40여 년이 지난 후 고종은 동갑내기 메이지가 보낸 특사로부터 협박을 받은 처지가 되었으며, 결국 일본의 보호국이 됐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조선과의 관계뿐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동북아시아 질서를 유지하던 국제 관계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모색할 때, 조선은 여전히 동북아시아의 질서는 청나라 중심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동갑내기 두 황제의 엇갈린 운명의 시작이었다.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는 쇄신과 망국의 갈림길에 선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명운을 가른 격동의 시대를 전한다.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1905년 을사조약까지 30년에 걸쳐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무수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시기 두 나라를 통치한 고종과 메이지는 서양세력이 점점 동쪽으로 밀려오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국방 등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맛보았다. 그렇게 고종과 메이지는 작게는 두 나라 사이의 역사를 연출했고 크게는 격동의 동북아 역사를 연출했다.
이 책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을 기점으로 하여, 고종과 메이지가 통치하던 무렵의 조일 관계와 동북아 역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현존하는 사료의 분석과 인용을 통해,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앞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와 그들이 직면한 다양한 사건을 살펴본다.
동시에 고종과 메이지를 포함하여 두 나라의 정국을 주도한 인물들이 그러한 사건과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또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세밀히 관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선과 일본의 관계사이기도 하지만 두 나라의 특정한 시대의 역사를 함께 읽는 비교사적 연구이기도 하다. 신명호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정가 2만 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