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조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수습을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작은 사진은 민경욱 대변인. 민 대변인은 서남수 장관을 옹호하는 ‘라면에 계란’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번 참사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모습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참사를 통해 범정부 차원의 재난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실제로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처럼 청와대의 위기대응 능력과 시스템 역시 바닥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위기대응과 관련한 청와대의 내부 난맥상은 지난 4월 16일 오전 참사 발생 직후부터 드러났다. 민경욱 대변인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전한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실을 김장수 실장으로부터 보고받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 인근의 모든 구조선박까지 신속하게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해경 특공대도 투입해 여객선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도 했다. 민 대변인은 “청와대는 김장수 실장이 위기관리센터에서 사고와 구조 현황을 파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관련 상황을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민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은 현장의 해경에서부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대응 태세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는 게 확인되기까지는 2시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초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로 이뤄진 수학여행단 전원과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된 것처럼 전해졌지만, 곧바로 수백 명이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자 민 대변인이 전한 박 대통령의 최초 지시 내용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는 ‘전원 구조’라고 보고받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가 올라갔고, 대통령은 그 잘못된 보고 내용을 토대로 지시를 내렸다는 의미다.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이를 토대로 한 체계적인 지휘와 대응은 헛구호에 불과했던 것이다.
청와대는 최초 보고 내용이 어떠했는지, 몇 차례에 걸쳐 어떤 계통으로 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초 보고가 잘못됐다’는 관측이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한 비서관급 인사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심각성을 당일 점심식사가 끝날 때쯤 알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얘기를 듣고 외부 점심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휴대폰으로 대형 참사가 우려된다는 뉴스 속보가 연달아 도착했다”며 “점심 먹으러 갈 때만 해도 이렇게 심각한 사태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국가안보실과는 상관없는 보직을 맡고 있지만, 사고 당일 오전 청와대가 전 직원 비상대기 명령을 하달할 만큼 긴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중대본을 방문해 이경옥 안전행정부 제2차관에게 “처음에 구조 인원 발표된 것하고 나중에 확인된 것하고 차이가 무려 200명이나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큰 차이가 날 수 있느냐”고 질책하듯 물어본 것에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스템상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참사 초기 박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는 등 수습을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는데도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사 현장을 찾았던 박 대통령의 지시 사항은 명료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실종자 구조를 신속히 진행하라는 것,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 상황을 신속하고 충실하게 전달해 주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중대본을 대신해 정홍원 국무총리 중심으로 꾸려진 범정부대책본부는 신속한 구조와 실종자 가족들과의 원활한 소통 등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것도 잡지 못했다. 탑승자와 구조자, 희생자 숫자와 명단은 계속해서 수정됐고, 심지어 희생자의 시신이 뒤바뀌는 사례가 속출했다. 구조 방법을 놓고도 정부와 실종자 가족, 민간 잠수부 등의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며 시위를 벌였는가 하면 해경과 갈등을 빚던 민간 잠수부들이 대거 철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혼란과 혼선이 이어지는데도 청와대는 보이지 않았다.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라는 (동아일보) 보도는 오보”라는 김장수 실장의 발언은 청와대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재난에 관한 한 자신은 책임자가 아니라는 그의 항변은 정부 부처들이 10개에 달하는 대책본부 난립 속에 제각각 삐걱거리며 국민의 신뢰를 깎아먹고 있는 와중에도 청와대가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줬다. 심지어 민경욱 대변인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재난 관련 정보와 첩보를 취합해 관련 수석실에 뿌려주는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기관리센터 내 20여 명의 직원 중 재난을 다루는 사람이 행정관 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청와대 지하벙커가 국방부 벙커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이 인사는 “재난 발생 시 구조나 수습 등 구체적인 집행은 각 부처와 기관의 몫이지만, 정확한 상황 판단과 체계적인 지휘는 청와대가 해야 한다”며 “애초에 ‘전원 구조’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청와대가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무능력과 뻔뻔함은 결국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 조짐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암울한 전망에 여권 인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민심 수습용 개각론, 심지어 내각총사퇴론까지 나오는데도 청와대가 발끈하기보다는 읍소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평소 개각론의 ‘ㄱ’자만 나와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정현 홍보수석은 최근 출입기자들에게 “한번 도와 달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문제 삼는 것은 좀 지난 뒤 얼마든지 가능하고, 지금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때”라고 호소했다.
일단 사태 수습이 먼저라는 주장이지만, 국민은 물론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청와대에게 시간을 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며 “개각론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소폭 개각으로는 쇄신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어렵다”며 “당장 내각 총사퇴는 어렵더라도 그에 준하는 대대적인 쇄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정홍원 총리가 먼저 사퇴하고 지방선거 뒤 전면 개각을 하거나 강병규(안행부)·이주영(해양수산부)·서남수(교육부) 등 물의를 빚은 장관들을 먼저 교체하고 지방선거 뒤 전면 개각을 하는 ‘2단계 개각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 27일 정 총리는 “사고 발생 전 예방에서부터 사고 이후 초동대응과 수습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