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생명을 싣고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초보 항해사에 맡기고 배가 침몰을 시작하자 가장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 선장의 모습은 우리 기성세대의 척박한 민낯이다. 여객선 운항을 이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선원으로 대거 채용하는 것은 물론 배를 개조하여 탑승자와 화물을 무작정 싣는 운항선사의 행태는 반사회적 기업경영의 전형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거친 물결과 싸우며 숨을 거두고 있는데 실종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정부의 무능은 책임을 회피하고 권력만 누리는 관료주의의 타락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실종자의 구조소식을 애 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 하고 라면을 먹는 공직자들의 모습은 돌이킬 수 없는 자기파멸이다. 정부 산하 민간단체들에 고위관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검사나 감독대상 입체들의 비리를 감싸고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공생구조는 사회를 무너뜨리는 암적 조직이다.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무슨 소용인가. 국가운영의 최소한의 조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이 안 되는 사회에서 소득의 증가는 맹목의 허구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늘어도 가계는 허덕이는 모순을 갖고 있다. 국민소득 증가가 대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대기업들은 유휴자금을 대규모로 쌓고 가계는 빚더미에 눌려 언제 연쇄부도의 위험을 겪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터진 이번 사고는 왜 우리가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가, 그 근본이유조차 불분명하게 만든다.
책임자 수사와 처벌, 관련법과 제도개선 등 구태의연한 수습책으로 이번 참사를 마무리하면 안 된다. 국가란 무엇이고 정부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하나. 사회지도층은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하나. 왜 우리는 서로 배려하며 따뜻하게 사는 사회적 공공가치를 가져야 하나. 그리고 경제성장은 무엇 때문에 하고 국민에게 어떤 의미를 줘야 하나. 기업과 기업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답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바다 속에서 죽어간 어린 영혼들 앞에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함께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서야 한다. 여기서 정부는 내각사퇴 등 명확하게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우리사회가 슬픔을 딛고 다시 태어나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