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66)이 곧 할머니가 된다는 소식에 워싱턴 일대가 또 한 번 들썩였다. 지난 17일 뉴욕에서 열린 클린턴 재단 행사에 클린턴과 나란히 참석한 외동딸 첼시(34)가 “올가을쯤 엄마가 된다”는 깜짝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결혼 4년 만의 임신 소식에 클린턴 부부는 물론이요, 클린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 누구보다도 딸의 임신을 바라고 있었던 클린턴은 트위터를 통해 ‘지금까지 가졌던 것 중에 가장 흥분되는 타이틀: 곧 할머니가 될 사람’이라고 적었는가 하면, 빌 클린턴 역시 ‘트위터 프로필에 ‘곧 할아버지가 될 사람’이라고 적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라는 글을 남기면서 기쁨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클린턴 가문의 임신 소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할머니’라는 타이틀이 클린턴의 앞으로의 정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유력한 대선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클린턴이기에 ‘할머니 클린턴’이라는 호칭은 많은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첼시의 임신이 클린턴의 정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 정치 전문가들과 언론들의 시각을 통해 살펴봤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코네티컷대학 로고 ‘유콘 허스키스’(UCONN HUSKIES)가 새겨진 티셔츠를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허브스트 총장은 힐러리의 외동딸 첼시가 올해 말 아기를 낳을 예정이어서 힐러리에게 손주를 위한 선물로 티셔츠를 일찌감치 선사했다고. AP/연합뉴스
장차 태어날 첼시의 아기를 가리켜 ‘미국판 로열 베이비’라고 부를 만큼 클린턴 가문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정치 가문 가운데 하나다. 때문에 첼시의 임신 소식은 워싱턴 정가와 언론, 그리고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클린턴 재단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첼시는 지난 2010년 스탠퍼드대 동문이자 투자금융가인 마크 메즈빈스키(36)와 결혼했으며, 그간 클린턴 부부로부터 ‘빨리 손주를 안겨달라’는 압력 아닌 압력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클린턴 부부는 지난 4년 동안 손주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을 종종 언론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드러낸 바 있다. 이를테면 빌 클린턴은 지난 2011년 “아내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할머니가 되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간절히 기다린 만큼 이번 임신 소식은 클린턴 부부에게는 그 어떤 소식보다도 반갑고 기쁠 수밖에 없을 터. 클린턴 지지자들 역시 첼시의 임신 소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클린턴의 대권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할머니’라는 호칭이 앞으로 클린턴의 대선 운동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동안 너무 강했던 클린턴의 이미지가 ‘할머니’라는 역할로 인해 푸근하게 바뀌면서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가 하면,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대선 운동 때 손주에게 입맞춤하는 모습은 클린턴이 대권에 한발 더 다가서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
이에 공화당 측 역시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분명 첼시의 임신이 민주당에게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인 마이클 골드파브는 자신의 트위터에 “완벽한 타이밍이다. 클린턴이 출마 선언을 할 즈음에 딱 맞춰서 출산하게 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앤드류 로스 소킨은 MSNBC의 <모닝조>에 출연해서 “클린턴 가족에 대한 온 나라의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이번 임신 소식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선거 기간 내내 갓난아기를 보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연민과 동정심이 첨가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저 클린턴과 관련된 일이라면 부풀리고 나서고 보는 언론의 과장된 태도일 뿐, 도대체 첼시의 임신이 클린턴의 정치 행보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매사추세츠 보스턴 대학의 정치 및 공공정책 여성센터 회장인 앤 북맨은 “나는 첼시의 임신으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충격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대체 왜 바뀐단 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녀는 “이는 대다수가 여성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사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만일 클린턴처럼 대통령감으로 자격을 인정받은 어떤 남자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된다고 발표를 할 경우에는 아무도 이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클린턴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불거진 또 다른 논쟁은 바로 성차별과 나이 문제다. 논쟁을 제기한 사람들은 ‘클린턴은 과연 할머니와 대통령이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할머니가 된 늙은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라는 뜻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가령 저명한 TV 저널리스트인 찰리 로즈는 “여성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은 힘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에 대해 곧 성차별적 발언이란 비난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지 클린턴이 여성이기 때문에 ‘할머니’라는 타이틀에 민감한 것이지, 실제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나 대선 후보들 가운데 ‘할아버지’들은 많았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었더 미트 롬니(67)가 있다. 출마 당시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던 롬니는 손주를 스물셋이나 둔 할아버지였으며(이 가운데 둘은 선거 운동 중에 태어났다), 당시 이를 문제 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 있을 당시 이미 할아버지였으며, 2016년 출마가 유력시되는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역시 현재 할아버지다. 하지만 이들의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이에 비해 클린턴의 ‘할머니’라는 신분이 유독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클린턴 지지자들과 민주당 측은 “분명 성차별적인 발상이며, 일부러 클린턴의 나이를 문제 삼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연 첼시의 출산이 클린턴의 백악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빠르면 9개월 후, 아니면 2년 후면 알게 될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음모론 솔솔 기막힌 타이밍…선거용 임신? ‘첼시의 임신은 선거를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첼시의 임신을 둘러싼 음모론이 제기됐다. 이른바 ‘첼시 버서리즘(birtherism)’이다. ‘버서리즘’이란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 버서리즘’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바마의 출생지에 대한 의혹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오바마가 미국이 아닌 케냐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첼시 버서리즘’은 첼시의 임신이 조작된 것이며, 실제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할 수 있도록 임신 사실을 꾸몄거나 혹은 실제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분히 계획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비교적 클린턴 부부에 대해 관대한 편인 <폭스뉴스>의 미디어 애널리스트인 로렌 애시번마저도 “첼시가 임신을 한 건 맞다.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임신은 클린턴의 백악관행을 돕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 많은 기자들이 계획된 임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뉴스맥스>의 스티브 멜즈버그는 “얼마나 기막힌 타이밍인가!”라고 비아냥거리는 한편, “신은 힐러리 클린턴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대선에 출마할 무렵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든든한 지원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뉴욕타임스>의 앤드류 로스 소킨은 “어쩌면 빌 클린턴이 어머니의 당선을 위해 임신을 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과연 이런 주장들은 사실일까. 아니면 음모론을 좋아하는 일부 망상가들의 허튼 소리일까. 우리로선 그저 9개월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