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태는 그 이후 오히려 더 확산됐다.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은 김종준 행장이 “임기를 끝까지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김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장고 끝에 나온 김 행장의 결심은 과거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 등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았거나 중징계가 예상되는 인사들이 스스로 사퇴해왔던 것과 다른 결정이었다.
법적으로 김 행장의 결심을 탓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의 문책경고를 받으면 받은 날로부터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불가능하지만 현직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도의적 책임’에다 중징계를 받은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이 흔들린다는 이유에서 사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김 행장의) 직무수행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는 데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문책경고가 사실상 사퇴하라는 시그널일 텐데 김 행장이 버티겠다고 하니 금융당국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감원은 김 행장과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제재 내용을 4월 22일 공시했다. 한 달가량 후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공시가 단 5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의 김 행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진 것으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별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김 행장의 거취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며 금감원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부인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을 두둔하고 나선 김승유 전 회장은 비록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하나금융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튿날 “전직 금융지주 회장의 말에 대꾸할 필요 없다. 그와 싸울 필요가 없다”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동양증권 사태, 카드 고객 정보 유출 등 이런저런 말썽 때문에 금융권과 금융당국의 신뢰성이 추락해 있는 상황에서 서로 다투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내비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발언을 개인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금융당국이 지난 이명박(MB) 정부에서 ‘금융권 4대 천황’으로 불린 인물 가운데 마지막 남은 김 전 회장을 완전히 내몰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MB 정부 때 금융권 4대 천황으로 불린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중 김 전 회장만이 아직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김 전 회장은 비록 2012년 3월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2년 임기의 고문직마저 지난 3월 사임했지만 최측근인 김 행장을 통해 하나금융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고문직에서도 물러난 상태여서 (김 전 회장이) 하나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은 터무니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나금융과 관계없다는 사람이 어째서 하나금융과 김 행장을 제재하는 금감원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을까. 하나금융 관계자는 “본인 일이 포함돼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4월 30일 금융권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이 벌써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해 집중검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감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하기도 했다. 금감원이나 하나금융이나 이번 사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미 갈 데까지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행장이나 금감원 둘 중 하나가 꺾여야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의미다. 하나금융이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김 행장 제재조치 이유 ‘묻지마 투자’ 나홀로 지휘? 김 행장과 김승유 전 회장, 하나금융, 하나캐피탈 등이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를 받는 것은 지난 2011년 하나캐피탈이 미래저축은행을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당시, 하나캐피탈은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지원에 나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당하고 무리하게 지원했다는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 뿐만 아니다. 하나캐피탈은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이사회 의결을 거친 것처럼 서류를 허위 작성했다. 이사들의 서명 역시 증자참여 확인서를 송부한 후 나중에 서면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또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을 결정하고 실제 참여했으면서도 이에 대한 경영공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하나캐피탈은 60억 원가량 손실을 입었다. 이런 일을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이던 김 행장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김승유 전 회장 지시 여부도 조사 대상이었지만 검토해보라는 지시만 있었을 뿐 부당 지원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