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복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들끼리 대상을 맞바꿔 괴롭히는 ‘교환 스토커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는 임신 사실을 알고도 몸을 요구했다. 어느 날 성관계를 거절하자 크게 화를 내며 나와 헤어지겠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었고, 그녀 역시 임신한 상태였다. 그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다.” 전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실을 알게 돼 아이를 낙태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 여성의 투고. 현재 이 글은 복수 사이트에서 삭제됐지만, 당시 “최악의 남자다” “괴롭겠다. 괜찮다면 내가 상담해주겠다” 등 여성을 위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최근 일본 웹상에는 이처럼 ‘복수 사이트’로 불리는 어둠의 사이트들이 차례차례 생겨나고 있다. 말 그대로 복수하고 싶은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는 사이트인데, 그만큼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토로하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글을 써서 울분이 풀리고, 서로를 달래주는 사이트라면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나 니가타세료대학의 범죄심리학과 우스이 마후미 교수는 “복수 사이트에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아 ‘교환 살인’ 및 ‘교환 스토커’ 같은 범죄의 온상지가 되기 쉽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살해하고 싶은 인물을 교환해 살인하는 ‘교환 살인’의 경우 추리소설이나 영화 속에는 종종 등장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조건의 파트너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복수 사이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비슷한 처지의 동지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분위기에 휩쓸려 ‘내가 대신 복수해줄게’라는 전개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같은 우려가 사건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경시청은 복수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의 부탁을 받아, 남자의 옛 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스토커 행위를 해온 혐의로 치과 여의사 요코로 마리나 씨(27)를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요코로 용의자는 넉 달간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편지와 함께 바퀴벌레 사체, 저주인형 등을 지속적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처음엔 피해자 여성과 재결합을 원했던 옛 남자친구 아오키 이치로 씨(43)가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편지의 소인이 찍힌 곳이 그의 자택으로부터 무려 400㎞나 떨어진 오사카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났었다. 그러나 실상은 아오키 씨가 복수 사이트에서 만난 요코로 씨에게 스토커 행위를 부탁했던 것. 두 사람은 ‘금전관계 없이 스토커 행위를 서로 맞교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복수 사이트에서 알게 된 20대 여성들이 서로의 스토커 행위를 도와준 혐의로 체포된 것. 이처럼 제2, 제3의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에서는 ‘교환 스토커 사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복수사이트에서 만난 ‘교환 스토커’ 아오키(왼쪽)와 요코로.
실제로 한 복수 게시판에는 이런 글도 올라와 있었다. “돈은 필요 없다. 나는 지금 확실하게 복수해야 할 인간이 3명이다. 나의 복수에 협력해준다면 기꺼이 무슨 일이든 돕겠다.” 복수의 내용과 조건은 불분명하지만, 흉계를 세우고 협력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글 투고자 역시 연락처는 프리메일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수 사이트 운영을 금지,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범죄에 악용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과거에도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공범을 모집해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07년 나고야시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어둠의 직업안정소’라는 정보교환사이트에서 만난 3명의 남성이 30대 여성을 강도 목적으로 납치·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사건으로 당시 인터넷 사이트가 범행에 이용됐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었다.
근래에는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중학교 여학생을 유괴해 수억 원의 몸값을 요구하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사건 역시 40대 남성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글을 투고한 뒤 남성 2명을 모집, 범행에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해 <산케이신문>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네티즌들이 감정에 부채질을 하고, 그것에 글쓴이도 고양돼 점차 일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리고 “복수 사이트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를 죽이고 싶다. 죽여 달라’고 호소해도 현행 일본법으로는 살인교사죄 등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만약 부적절한 정보라고 해도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 강제로 글을 삭제할 순 없고, 삭제 요청밖에 하지 못한다. 범죄에 이용돼 사이트가 폐쇄되더라도 어느 순간 다른 이름으로 부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악순환은 반복된다. 또 복수 사이트 이용자 사이에서만 통하는 ‘은어’가 존재해 글만으로는 범행 계획이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사이버범죄에 정통한 고난대학 법학과의 소노다 히사시 교수는 “인터넷과 현실 사회는 분명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방법이 크게 다르다. 결국 정보통신 윤리교육을 충실히 실시해, 이용자의 자세와 도덕에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전하며, 확실한 대책이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