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여객기 운항 중 엔진고장을 인지하고도 비행을 강행한 사실이 밝혀져 항공사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금호아시아나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세월호 침몰 사건은 4월 16일 오전 8시 55분경 처음으로 알려졌다. 온 나라가 세월호 실종자 구조 여부에 빠져 혼란스럽던 지난 4월 19일 오전 8시 50분경. 인천공항에 대기하던 아시아나항공 OZ603편 여객기는 242명의 승객을 태우고 사이판을 향해 출발한다. 그런데 이륙한 지 1시간쯤 후 비행기에 심상찮은 징후가 감지된다. 조종석 모니터에 “왼쪽 엔진 오일 필터에 이상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뜬 것이다.
비행기를 운항하던 양 아무개 기장(61)은 아시아나 종합통제센터(OCC)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매뉴얼에 따라 고도를 긴급하게 낮추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경고 메시지는 계속해서 깜박였다. 양 기장은 이대로 더 이상 비행은 어려울 것이라 판단, 인근 공항인 후쿠오카 공항으로 회항을 시도한다.
비행기가 후쿠오카 공항으로 한창 향할 무렵 아시아나 종합통제센터로부터 갑자기 메시지가 전달된다. “PLS(Please) HOLD ON NOW” 즉 대기를 해달라는 것. 이윽고 “SPN MAINT WILL RESERVE AFT LANDING, NO PROBLEM”(착륙 후에 사이판 정비사에게 정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문제없다)라며 비행재개를 요청한다. 통제센터에서 후쿠오카로 회항하는 것이 아닌 원래 목적지인 사이판으로 그냥 가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후쿠오카 공항을 약 50마일, 10분 정도 앞둔 시점에서 양 기장은 다시 사이판 공항으로 향한다. 회항을 위해 23000피트로 낮췄던 고도는 35000피트로 상승했다. 깜박이는 엔진 오일 필터 경고등을 뒤로한 채 그대로 비행기는 무려 ‘4시간’을 이동해 사이판 공항에 도착한다.
242명의 승객을 태운 ‘아찔한 비행’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착륙 후 살펴 본 왼쪽 엔진 오일 필터 주변에는 기준치가 넘는 쇳가루가 발견됐다. 그만큼 엔진 마모가 심했다는 것.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한국에서 엔진을 긴급 수송 받아 교체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사건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약 3일 만에(19일) 벌어진 일이라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세월호 때문에 지금 다들 쉬쉬하는 것이지 정말 이것도 큰 사건이다. 엔진 오일 필터의 이상을 방치해 엔진에 불이라도 붙었으면 어쩔 뻔했나. 그대로 바다에 고꾸라지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귀띔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운항규정 위반’도 도마에 올랐다. 국토부가 밝힌 운항규정에 따르면 “운항 도중 조종사가 보는 모니터에 엔진 이상 메시지가 떴을 경우 속도 조절 등의 조치를 취하고, 그런데도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인근 공항에 착륙을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경고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인근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하지 않은 사실이 규정에 걸린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운항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 합동조사단을 꾸려서 그 부분을 추가 조사 중에 있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과연 누가 ‘회항 취소’를 최종 결정했는지 쟁점이 되고 있다. 정황상 위험을 느낀 양 기장이 회항을 결정했으나 회사 측에서 메시지를 보내 회항을 막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종합통제센터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다. 최종 결정은 기장이 한다. 이번 건 역시 양 기장이 최종 결정을 한 것이다. 국토부 조사를 받은 후 결과에 따라 양 기장의 징계 여부도 검토할 예정”라고 전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일요신문>은 양 기장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회사와 연락을 하길 바란다”는 짧은 답변만을 남겼다.
모든 권한이 기장에게 있다는 아시아나항공 측의 해명에도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다. 회사가 지나치게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 소속 A 기장은 “표면적으로 조종사에게 최종 권한이 있는 게 맞다. 이 경우에도 조종사의 잘못이 맞다. 매뉴얼대로만 했다면 전혀 문제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 측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종합통제센터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다가올 수 있는 불이익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점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회사 측에서 조종사의 QAR(운항기록)을 다 들여다보고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할 가능성도 있다. 조종사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회사 내부에 충분히 잡히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일부 기장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세월호’의 상황과 유사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세월호를 운항했던 이준석 선장은 1년 계약직이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외신에서는 “이번 사건의 최종 원인은 선장이 아니라 (비용 절감만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계약직(다년 계약 촉탁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기 배’ ‘자기 비행기’라는 인식과 그에 따른 책임감이 정규직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소속 C 기장은 “일부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기도 한다. 얼마나 아찔한 상황이었으면 이런 말까지 나오겠느냐”고 한탄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촉탁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의 의사를 결정하기가 쉬울 수도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해왔고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렇듯 회항 취소의 최종 결정권자에 대한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이 회사 측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건 최초 국토부에 ‘허위 보고’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함께 불거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사건 이후 국토부에 “규정에 따라 조치한 뒤, 경고 메시지가 사라져 계속 운항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후 확인 결과 경고 메시지는 사이판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측은 “허위 보고가 아니라 조종사와 통제실 간 소통에 문제가 있어 회사도 경고 메시지가 꺼진 것으로 잘못 안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시아나 측의 해명에도 국토부는 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허위 보고 사안에 대해서 엄중하게 조사 중이다. 죄질이 나쁘면 기본 처분에 50% 증가 처분을 줄 수 있다”라고 전했다. 국토부는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열어 사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사건 이후 국토부는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전 항공사의 비상대응체계에 대한 점검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항공사의 안전 실태 조사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문병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측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에서도 선장이 어떤 상황이 닥쳤는데 자기가 충분한 판단을 못하고 본사한테 전화 한통 붙잡고 물어봤듯,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비쳐지는 모습”이라며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저가항공, 전 항공사에 대한 안전 실태 조사를 계획 중에 있고, 지방선거 이후로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회항 않고 직항한 까닭 회항 비용에 비하면 과징금은 ‘껌값’ 하지만 다수의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회사 입장에서는 회항을 하면 드는 비용이 엄청 나게 많다. 일단 기름값도 그렇고 숙박비, 심지어 고객 컴플레인(불만)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이미 한 차례 사고가 발생한 회사다. 이번에도 엔진 이상으로 회항을 했다고 언론에 알려졌다면 세월호 사고와 겹쳐 여파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막대한 회항 비용 지출과 비교해 운항규정을 어겼을 경우 국토부가 부과하는 과징금이 ‘1000만 원’밖에 되지 않아 ‘새 발의 피’라는 지적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과징금을 감수하더라도 운항규정을 어겨서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에 사실상 ‘남는 장사’라는 평가다. 때문에 과징금의 액수를 좀 더 키워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상당하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그런 지적들이 많아 과징금 액수를 늘리는 방안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의 운항규정 위반에 대해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운항규정을 위반할 경우 ‘조종사 자격정지 30일, 항공사 항공기 운항정지 7일 또는 과징금 1000만 원’으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운항규정 위반으로 항공사 항공기 운항이 정지되는 경우는 지난 15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일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곳에서 그런 지적이 많아 ‘노선정지 처벌’이라는 방안도 검토하는 상황이다. 조만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심의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환] |
종합통제센터 내부 추적 “조종사 출신 없어… 전문성 포기한 셈” 이번 아시아나항공의 아찔 비행으로 인해 조종사에게 회항 취소 권고를 한 ‘아시아나 종합통제센터’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9년 2월 문을 연 아시아나 종합통제센터는 항공사 종합통제센터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기도 한다. 현재 종합통제센터가 있는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밖에 없다. 지난해 7월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사고 관련 윤영두 당시 사장이 사고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종합통제센터는 기상 악화와 기체 결함, 테러 등 비행기 운항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관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위기 상황 발생 시 의사결정을 내린 뒤 최고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종합통제센터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종합통제센터에는 항공기 전문가 ‘150여 명’이 모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나 종합통제센터에 대한 갖가지 비판이 떠오르고 있다. 일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 사이에서 “종합통제센터가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종합통제센터를 신뢰하는 조종사들이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만큼 비행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종합통제센터를 구성하는 전문가 중에 조종사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종사 출신이 센터에 없는 이유와 관련해 “센터는 24시간 운영되는데 거기에 조종사를 투입시키면 회사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즉 조종사는 비행에 계속 투입시켜야 이익인 것이다. 결국 ‘돈’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센터에 조종사 출신이 없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항공기 정비 담당, 운항승무원뿐만 아니라 조종사 출신도 통제센터에 있다”면서도 “종합통제센터의 인원 구성이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대외비라 알려줄 순 없다”라고 밝혔다. 조종사 출신이 종합통제센터에 있다는 회사 측 해명에도 ‘전문성’ 논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회항 취소 의견을 낸 것과 ‘엔진 셧다운’(엔진 정지)을 왜 조치시키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비행기 비상 시 세부 지침을 수록해 놓은 ‘QRH’(quick reference handbook)에 따르면 여러 조치를 했음에도 엔진 오일 필터 비상등이 계속 깜박 거릴 시에는 해당 엔진을 정지시키는 절차를 취하게끔 되어 있다. 엔진을 정지시켜도 나머지 한 개의 엔진은 가동이 되기에 몇 시간가량 운항이 가능하고 결국 인근 공항에 회항을 하게 하는 비상 방법이다. 종합통제센터의 여러 의문점에 대해 국토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