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태안 시의회의원들이 지난 3월 17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 앞에 모여 공정한 공천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상향식 공천? 지금 말도 못할 지경이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이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총선 때 여론조사를 사용한 적이 있지만 지방선거에 도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새누리당에서 상향식 공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기초선거 무공천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은 공천을 하면서도 당원과 시민들에게 최대한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후보자는 당원투표 50%, 여론조사 50%로 결정된다.
야당이 무공천 문제로 내부 분열을 겪는 동안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하게 공천을 진행하면서 약진했다. 하지만 경선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불법 행위가 일어나 당 내부에서도 상향식 공천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가장 황당했던 일은 얼마 전 송파구에서 있었다”면서 “구청장 경선을 하기 전에 여론조사가 유출된 것이다. 해당 지역구에 관계된 국회의원들이 먼저 문자를 받았는데 이것이 홍문종 사무총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공천관리위원회 회의 시간에 이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구청장 후보 경선은 곧바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후보들의 불법행위 의혹들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청장과 서구청장, 북구청장 후보 경선에서 경선패배 후보자들이 반발했다. 경북 경주와 포항, 의성 등에서 기초선거 후보들의 돈 봉투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인천시에서는 남동구청장 후보가 선출됐지만 여론조작 의혹으로 선출이 취소되기도 했다.
박빙 속 선출된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안동 권씨 종친회가 권 후보를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선관위가 조사에 들어간 것. 대구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건 후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지난 지방선거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 사건처럼 다른 측이 도와줘 문제가 된 경우”라면서도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문제는 없을 듯하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후보의 지지도가 비슷하거나 지역이 좁을수록 여론조사에 대한 불법 행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후보 간 경쟁력이 비슷할 경우 여론조사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론조사 경쟁이 치열한데다가 지역이 좁을수록 여론조사는 왜곡되기 쉽다는 것이다. 김상진 뉴코리아 정책연구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선출할 때부터 국민참여경선 붐이 일면서 민주당에서 대부분 상향식 공천을 하게 됐는데 여론조사 공론조사 등에서 모두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선거인단에 조직을 동원하거나 돈 경선을 하는 등 불법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여론조사 범위가 좁을수록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시민들이 작은 선거까지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에 지방선거 후보들은 인지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경력 하나로 여론조사를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력이 센 토호들이 유리하다. 조직력이 동원되니 사무실에 전화기를 여러 대 두는 등 각종 탈법이 발생한다. 결국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으로 야당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이 상향식 공천 도입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사진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린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새누리당의 개혁적인 공천 방식은 여론조사 실시만은 아니었다. 상향식 공천을 하되 상대적으로 지역에서 불리할 수 있는 청년비례대표 수를 늘리고 여성 공천지역을 선정하는 등 소수자를 위한 배려도 포함됐다. 상향식 공천이 시작될 당시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정치권 최초로 청년비례대표가 지역선거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며 개혁적인 공천을 장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앙당에서 ‘청년’에 대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청년 활동가는 “아직까지 청년 몫으로 반영된 것은 없다. 지방선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시·도당인데 지역마다 색도 다르고 해서 진행되기 힘든 부분도 있다”며 “중앙당 차원에서는 한다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하나의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이다. 당헌당규 등에 청년 몫에 대한 말도 없고 현재까지 정해진 룰도 없다”고 토로했다.
여성우선 공천지역 선정도 상향식 공천이 진행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새누리당은 여성우선 추천지역으로 서울 서초·종로·용산, 부산, 대구, 경기 등 총 7곳을 선정했지만 중앙당에서 여성 공천지역을 보여주기 식으로 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성우선 추천지역으로 선출된 후보 중 2명은 현직이다. 대구 중구의 윤순영 구청장의 경우 이미 텃밭을 다져놓은 현직 구청장으로 굳이 여성 공천지역으로 선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분석이 많다.
기본적으로 여성우선 공천지역을 선정할 때 남성 후보들의 반발이 있어 왔지만 특히 이번에 반발이 거셌던 이유는 상향식 공천에 후보들의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중앙당 입장에서는 반발하는 후보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앙당이 ‘하향식’으로 여성 공천지역을 선정해온 것은 맞다. 이번에도 그랬는데 반발이 심했다. 현장에서 보면 중앙당의 결정과 받는 지역에서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상향식 공천을 하기로 해서 후보들의 기대감이 컸는데 여성 공천지역으로 결정된다고 하니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중앙당에서도 처음에는 막 결정을 내려 보내다가 지역별로 반발하니 재협의도 하고 시·도당에서 결정해 후보들끼리 순번을 잡아서 경선을 하기도 하고 적당한 선에서 정했다.”
개혁을 장담한 새누리당의 이번 상향식 공천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