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워 큰 효과를 봤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유승민 의원(왼쪽)과 문재인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뒤이을 경제이슈로 떠오르는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요신문 DB
“사회적 시장경제를 새롭게 펼치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중산층이 줄어들고 소득격차가 확대되면서 소득불균형 수치인 지니계수가 계속 높아져 OECD 34개국 가운데 6위를 차지했고 국민 절반이 스스로를 하층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시대 정부의 제1 책무는 불평등 심화를 완화시키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4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사회적경제를 화두로 꺼내들면서 여야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다음날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회 차원의 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정책 수립에 여야가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뒤이어 민주당은 2월 말 사회적경제정책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지난 2월 10일에는 문재인 의원실이 주관하는 ‘사회적가치기본법(가칭)’ 제정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문재인 의원의 첫 번째 법안발의 관련 공청회였다. 이날 문 의원은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그 방안 중 하나가 사회적경제인데,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이 아직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기본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야권에서는 문 의원을 비롯해 사회적경제정책협의회 위원장인 신계륜 의원, 협동조합활성화 포럼을 이끄는 김기준 의원 등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에 앞서 사회적경제특위를 구성했지만 당내 후순위로 밀려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3선의 유승민 의원이 법 제정에 적극 나서면서부터다. 지난 4월 10일 유승민 의원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공청회를 열어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우리당은 헌법 119조 1항(경제활성화)에 과도하게 집착해 2항(경제민주화)의 의미를 간과했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거론하며 경제활성화에 주력하는 집권여당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셈이다.
현재 여야가 동시에 준비 중인 사회적경제 관련 기본법은 큰 틀은 비슷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다. 유승민 의원 측은 “우리가 준비하는 기본법은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하나의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정부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자는 것이 골자”라며 “현재 사회적 기업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안전행정부, 자활기업은 복지부 등으로 나눠 있어 현장에서 혼선이 많다. 정부 지원금만 받고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폐해를 막자는 취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문재인 의원이 준비 중인 사회적가치기본법은 공공기관의 구매확대에 방점이 찍힌다. 문재인 의원실 관계자는 “사회적가치기본법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공공기관에서부터 사회적가치를 우선시하자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에서 조달·구매·위탁과 같은 공공서비스 계약을 맺을 때 대부분 최저가입찰로 이뤄지고 있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진입장벽이 높다. 이를 배려함으로써 공공성을 확보하고 인권·노동권과 같은 기본가치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끌어올리자는 것이 기본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두 의원 모두 법안 내용 대부분을 완료하고 세부 내용을 조율 중에 있어 발의까지는 초읽기 상태다. 두 기본법이 비슷한 시기에 발의될 경우 내용이 충돌하면서 여야 합의를 통해 절충안이 나오거나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 후보군인 유승민 문재인, 두 의원의 법안 가운데 어느 기본법이 우선시되는지에도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권력 핵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 의원과, 지난 대선 패배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문 의원이 하반기 국회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 측은 “(기본법 제정과 관련해) 청와대와 조율이 되고 있다. 청와대도 사회적경제 지원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정권 차원에서의 지원 가능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야권은 진보진영의 광범위한 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부각시켜 기본법 제정을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유승민 의원이 상반기 국회에서 국방위원장으로 있으며 지역구 숙원사업인 K2 공군기지 이전 문제를 매듭지었다. 하반기에는 본인 전문분야인 경제에 집중해 존재감을 높이려고 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큰 효과를 본 전략으로 대권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아니겠느냐”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활성화에 치중하는 목적 자체에 의심을 품고 있다. 친박계의 한 보좌관은 “통합진보당이 지역에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역할이 컸다. 당원들이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정부 사업을 위탁하거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면서 생긴 수익을 특정 정치인 후원금으로 몰아주는 것”이라며 “사실상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 모으기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사회적기본법이 악용될 가능성도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용어 정리 사회적기업 :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관. 이윤 추구가 목적인 일반 기업과 구분되지만 비영리 기관은 아니다. 협동조합 :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사업체를 소유하고 발생하는 이익을 민주적으로 나눠 갖은 형태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에 따라 5인 이상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마을기업 : 마을 주민들이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수익 사업을 추진해 지역민에게 소득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다. 자활기업 : 저소득층이 상호 협력해 탈빈곤을 위한 자활사업을 운영하는 업체. 설립 요건이 2인 이상의 사업자에서 1인 이상으로 완화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