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당 비서로 좌천된 최룡해(왼쪽)가 김정은과 함께한 모습. 애초에 최룡해는 김정일의 사람이지 김정은의 사람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은 지난 3월, 1140호 ‘최룡해도 박봉주도 성과 못 내면 파리목숨’ 제하의 기사를 통해,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박봉주 내각총리를 비롯한 2인자들의 추가적인 숙청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기사의 요지는 지난해 12월, 정권의 암적 존재로 지목된 장성택의 숙청 이후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은 결국 2인자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일요신문> 보도 이후 2개월 만에 최룡해가 군부 최고직책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당 비서로 물러났다. 통일부는 최룡해를 두고 이뤄진 ‘이번 인사가 곧 숙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한때 김정은 시대 2인자로 불리던 그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좌천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그의 좌천성 인사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최룡해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다른 쪽에선 앞서 <일요신문>이 제기했듯, 최근 김정은이 군 정치기관 사업 해이를 수차례 언급한 것을 들어 최룡해 책임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가장 첫 손에 꼽히는 배경은 ‘용도폐기’다. NK지식인연대 박건하 사무총장은 “김정은이 생각하는 최룡해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라며 “최룡해는 어차피 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다. 애초부터 불안한 시기 정확히 당적 지도 역할만 분담 받고 군에 들어선 것이다. 현재 안정기에 접어든 이상 자연스럽게 물러난 듯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대북소식통은 이러한 ‘용도폐기론’을 권력구도와 연결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최룡해는 김정일이 생전에 3대 세습을 앞두고 자신의 일가와 함께 세습의 설계자로 지목한 인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장성택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성택이 지난해 제거됐다. 나이 어린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아버지 세대인 최룡해를 부담스럽게 지근거리에 두고 쓸 일이 없어졌다. 단언컨대 최룡해는 김정일 사람이지 김정은의 사람은 아니다.”
또 다른 배경은 최룡해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박건하 사무총장은 “북한에서도 군사계통과 정치계통은 엄연히 다르다. 군부 입장에선 최룡해의 등장이 당연히 불만이다. 군인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차수를 달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며 “군부 내에서 여러 경로로 상부에 이에 대한 이의와 불만을 제기했다. 체제 통치에 있어서 가장 선봉에 있는 군부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김정은은 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의 소식통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번 좌천을 최룡해의 군 장악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아무리 당 출신 인사라 하더라도 기존의 군부 인사에 명확한 성과와 능력을 보여줬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북한 내부에 따르면 최룡해가 결국 이러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군부의 불만이 결국 쌓이고 쌓여 터져 나온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황병서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정통 군 출신 인사면서 북한의 당 인사를 총괄하는 핵심기구인 조직지도부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그가 군부의 정점인 총정치국장에 올랐다는 것은 군이 최룡해라는 변칙 카드를 거두고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당으로 돌아간 최룡해는 근로단체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근로단체는 청년연맹, 농업인과 근로자들을 아우르는 농업근로자동맹 등으로 이뤄진 전국 조직이다. 때문에 앞서의 소식통은 최룡해의 추가적인 숙청 수순과 반대로 군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북한의 근로조직은 북한의 상당수 인민이 속한 거대 조직”이라며 “비록 군 권력의 핵심에선 물러났지만, 김정은은 최룡해에게 아직까지 당 조직에서의 역할은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다시금 그가 군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최룡해에게 그의 역할을 좀 더 축소시켜 명확히 해준 셈”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최룡해의 이번 인사가 증명하듯, 북한의 2인자는 1인자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풍전등화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한 셈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숙청되거나 좌천된 인사는 리영호 전 차수, 장성택에 이어 최룡해까지 벌써 세 번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군부 ‘트로이카’ 권력구도 황병서>리영길>장정남 순 북한 군부의 3대 요직은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그리고 인민무력부장이다. 이번에 인사가 이뤄진 총정치국장은 현재 북한 군부의 최고 요직으로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군 내부에서 당의 정치 사업을 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군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이번에 새롭게 임명된 황병서의 계급은 차수(우리의 원수에 해당)다. 지난해 2월부터 리영길이 맡고 있는 총참모장 직책은 군의 작전 및 명령권을 행사하는 자리로 우리의 참모총장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북한 지상군의 실질적인 지휘·통제를 담당하고 있지만, ‘군 위의 당’이라는 원칙 탓에 앞서의 총정치국장보다는 한 단계 아래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리영길의 계급은 황병서보다 낮은 대장(우리의 대장)이다. 과거 김일성 주석 시절 북한 군부의 최고 권력을 쥐었던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일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는 앞서의 두 요직에 밀린 상황이다. 인민무력부장이 대외적으로는 군을 대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권한을 앞서의 요직에 빼앗긴 채 행정권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행정부처에 해당하는 국방부와 비슷하다. 지난해 5월 인민무력부장에 오른 장정남의 계급은 앞서의 두 요직보다 낮은 상장(중장)이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