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학교를 떠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회초년생에게는 회사의 지시사항이 불합리적으로 비춰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합리함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선배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남긴 ‘전설의 신입사원들’이 있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의 이치무라 히로후미 씨(55)도 그중 한 명이다.
이치무라 씨가 노무라증권에 입사한 것은 1983년. 비록 지방 지점에 배치되었지만, 1년 만에 100억 원이라는 놀라운 판매액을 기록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적에는 ‘명함 수집’이 큰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그가 신입사원 시절, 당시 ‘하루 명함 40장 모으기’가 신입들에게 할당량으로 주어졌다. 물론 불만을 가진 사원들도 많았으나 이치무라 씨는 그렇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진 회사 방침이라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40장의 명함을 받기 위해 부지런히 뛰다보니, 어느덧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가령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험을 통해 ‘중견기업의 사장은 주식을 좋아하지만, 대기업의 지점장은 주식을 하지 않는다’든지 ‘같은 오너라도 크라운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주식에 관심이 없는 반면, 벤츠를 타는 사람은 주식을 좋아한다’,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미인인 회사의 사장은 주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등등의 정보를 몸소 터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명함에 얽힌 이런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치무라 씨는 대형포목점 사장이 시내 제일의 고액 납세자라는 것을 알고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방문할 때마다 “사장님을 만나 뵐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50회 이상 방문을 계속했다. 겨우 사장과 마주하게 된 날 뜻밖에도 사장은 “자네가 이치무라인가?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네”라고 의사를 밝혀왔다. 사실은 그가 방문할 때마다 전한 명함을 여비서가 사장에게 건네고 있었던 것. 결국 사장은 그의 의지를 높이 사 거액을 맡겼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치무라 씨는 “40장의 명함을 모으기 위해선 거의 200번을 시도해야 한다. 일주일을 계속하면 1000번 시도에 200장의 명함을 받게 된다. 그중 사장의 명함은 겨우 25장. 게다가 거래로 이어지는 것은 불과 1건 정도다. 그러나 999건의 영업이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1000번을 시도하지 않으면, 한명의 고객과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 뒤 이치무라 씨는 도쿄 신주쿠지점으로 옮기게 됐고, 4년 만에 그가 맡은 자산은 2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당시 노무라증권이 창립된 이래 최고의 기록이었다.
“마라톤에서 처음 선두그룹에 들지 못하면 우승은 있을 수 없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성공하려면 20대부터 선두그룹에 서야 한다. 따라서 평생의 커리어를 좌우할 수 있는 신입시절 나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 이처럼 “잘나가는 사람은 20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모리모토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역대 1위의 누계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과거 ‘전설의 신입사원들’은 단순히 시대 흐름을 잘 탄 덕분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나 뛰어난 인재는 일찍부터 눈에 띈다. 현재에도 ‘전설’은 많이 존재한다.
기린 맥주의 시라이시 다이고 씨(27)는 입사 9개월 만에 히트상품을 개발해 주목받는 신입사원이다. 프리미엄 맥주 ‘그랜드 기린’팀에 배정된 그는 자사의 프리미엄 맥주가 여성들에게 좀처럼 호응을 얻지 못하자, 묵묵히 새로운 상품 콘셉트 개발에 착수했다. 머릿속에는 영화를 보거나 독서를 하는 등 1~2시간에 걸쳐 마시는 맥주가 떠올랐다. 맥주가 미지근해지는 단점을 독특한 향미로 커버한 제품을 고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프리미엄 맥주 ‘더 아로마’다. 이 상품은 지난해 11월 첫 출시된 지 몇 달 만에 3만 케이스(1케이스당 20병) 출하와 함께 매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주간겐다이>가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시라이시 씨는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업무에 쏟아부은 결과물”이라고 대답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장을 보는 성격이 좋은 결과를 낳게 했다는 분석이다.
독자적인 무기를 내세워 회사에 들어온 ‘강자’도 있다. 파나소닉의 간부는 “우리 회사에 입사 1년차 때부터 에이스로 불리는 사원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 사원은 흔히 생각하는 일류대학 출신은 아니란다. 지방대학 인도네시아학과를 졸업한 그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어학이었다.
마침 파나소닉이 인도네시아 사업전개를 본격화시키려던 해에 그가 입사한 것. 현지인과 비즈니스가 가능할 정도로 인도네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점에서 그는 딱 들어맞는 적임자였다. 입사 1년째부터 인도네시아로 출장 가는 임원을 모셨고, 중요한 계약에도 모두 참석했다. 2년째에는 현지 주재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동기 중에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의 일은 ‘하찮은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일의 본질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신입사원을 거쳐 현재 ‘직장의 신’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선배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우직하게 기본을 갖추고, 목표를 향한 한결같음이 성공의 근원이다”고 말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