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처음부터 직원 전 씨의 추행 또는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전 씨를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게 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1995년 제정돼 몇 차례 개정된 정신보건법 3조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될 수 있는 정신질환자는 ‘정신병, 인격장애, 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 정신장애를 가진 자’라고 돼 있다. 이 법에 다르면 불면증 하나만 있어도 정신질환자 범주에 속하게 된다.
또 같은 법 24조는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 1인이 입원을 결정하면 즉시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보호자들이 동의하면 입원 6개월 뒤 입원 연장도 가능하다. 보호자와 전문의의 동의만 있으면 자의에 반해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신병원의 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 강제 입원 규정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을 했다가 뜻하지 않는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정부나 인권단체가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 병원 내부 관계자들에 의한 성추행과 학대 등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장애학생이 재학 중인 특수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저질러진 성추행과 학대의 대표적인 사례가 ‘도가니 사건’이었다. 지난 2011년 이른바 ‘도가니 법’으로 알려진 사회복지 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도가니 사건’이 재발하고 있다.
경북 안동의 한 정신요양병원에서 일어났던 황당한 성폭행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병원 보일러실 직원으로 근무하던 전 아무개 씨(30)는 의료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폐쇄병동까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각 병실의 보일러 점검을 위해서였는데 사건이 발생한 지난 2월 7일도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온도 체크를 핑계로 폐쇄병동을 찾았다.
그런데 전 씨의 행동은 어딘가 수상했다. 밤 11시 11분경 여성 환자만 있는 2층에 도착한 전 씨는 알코올 중독 및 우울증으로 입원한 환자 A 씨(여·36)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온도 체크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 씨는 4~5분여 동안 방에서 머물다 나왔다.
이후 전 씨는 곧장 맞은편 병실로 이동해 또 몇 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방에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아 입원한 B 씨(여·22)가 약을 먹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B 씨의 병실에서 나온 전 씨는 곧장 지적장애 2급인 C 씨(여·30)가 입원한 또 다른 병실로 들어가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시 복도에는 2~3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전 씨의 행동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게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3개의 병실에 대한 ‘점검’을 마친 전 씨. 그런데 조용했던 폐쇄병동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전 씨가 두 번째 방을 다시 들어감과 동시에 B 씨의 고함소리가 퍼졌던 것. 당황한 전 씨는 서둘러 병실을 나왔으나 복도로 나온 A 씨에게 붙잡혀 실랑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정신병원의 내부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처럼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자 누구도 어제의 일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뀐 것이라곤 전 씨가 해당 병원이 아닌 같은 재단의 다른 요양원으로 옮겨 근무하게 됐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날 밤은 잊혀갔으나 A 씨의 죽음으로 인해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개인적인 일로 마음의 상처를 얻은 A 씨는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걸렸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위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죽고 싶다” “며칠 못 살 것 같다” 등 괴로움을 호소하는 일이 늘어만 갔고 결국 퇴원 일주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인은 약물과다 복용. 유족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보냈는데 도로 악화돼 나와 결국 사람이 죽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A 씨의 어머니가 생전 딸이 “병원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말한 것을 토대로 지난달 중순 검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뒤늦게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알고 보니 ‘그날 밤의 소동’은 전 씨의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던 것. 이에 경찰은 해당 병원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추가로 피해자를 찾아냈다. 안동경찰서 관계자는 “병원을 찾아보니 다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라 피해자가 더 있을 것 같았다. 조사 결과 B 씨와 C 씨도 당일 전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 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밤이 늦었으니 온도 체크를 위해 병실에 갔을 뿐 환자들과는 이야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이후 전 씨의 행동에 의심을 품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다는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를 추궁하니 그제야 술에 취해 피해자 중 일부를 추행했다고 하더라. 심지어 피해자들과 사귀는 사이라는 말까지 했지만 통화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사적인 교제 등의 사실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폭행에 대한 혐의는 부인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 씨가 강력하게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 신고가 있었다면 이불, 옷 등의 증거물을 확보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낼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많이 흘러 피해자의 진술증거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10분 남짓한 시간에 3명의 여성들을 추행 또는 성폭행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수면제 등을 복용하고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 ‘성관계는 했으나 사정은 하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재판부가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 씨는 성폭력특례법(장애인강간)을 적용해 구속됐으며 사건은 대구지검 안동지청에 송치된 상태다.
한편 경찰 조사 결과 병원에서도 해당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여성들이 가장 먼저 간호사실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린 것. 하지만 병원은 전 씨를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게 했을 뿐 피해자들에게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조사를 다 받았는데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귀찮으니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여전히 약자인 지적장애 여성들 ‘제2 도가니 사건’ 비일비재 청각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던 광주 인화학교에 대한 영화 <도가니>는 2011년 9월 개봉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5년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영화를 통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인화학교에 대한 재수사는 물론이고 관련 법 개정까지 이뤄졌다.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국회는 지난 2011년 10월 ‘도가니 사건’과 같은 끔찍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했다. 일명 ‘도가니법’으로 이를 통해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 7년, 10년으로 형량을 대폭 늘렸으며 무기징역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장애인 보호·교육 시설의 장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행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형이 가중되게 했다. 하지만 ‘도가니법’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법 개정 3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제2의 도가니 사건’이라 불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지난 2월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50대 부부가 수년 동안 지적장애인을 학대, 폭행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남자 원장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화성과 수원에서 노인요양보호시설과 지적장애 여성복지시설을 운영하며 30~40대 지적장애 여성 4명을 성폭행하거나 강제 추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는 성폭행을 저질러 놓고도 피해자들에게 “외부에 말해봤자 정신장애인 말을 믿어줄 사람들은 없다. 발설하면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겠다”는 협박도 일삼았다고 한다. 보호시설뿐만 아니라 정신병동에 입원한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폭행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지난해 울산의 한 병원 정신병동에서는 요양보호사가 정신분열증 환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상했다. 해당 요양보호사는 과거 강간치상죄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과도 있었으나 누구도 그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안동 관할 구역 내 정신병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정부에서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재정 등의 어려움으로 제대로 감독이 되고 있지 않아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성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최선을 다해 조사를 했으나 전문가가 아니니 미흡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사고 예방이 중요한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