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마일 공인기록에 도전하는 ‘네메시스’(왼쪽)와 ‘키팅볼트’. 부가티가 2010년에 세운 최고속도 기록을 깰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라이온슈퍼카는 유럽 브랜드가 지배하는 최고 슈퍼카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앞으로 네메시스의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생산해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맥라렌 P1, 페라리 라페라리 등 세계적인 슈퍼카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차의 이름인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율법의 여신’을 뜻하지만 ‘강적’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런데 트라이온슈퍼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양산형 스포츠카의 최고 스피드 기록을 깨는 게 트라이온의 또 다른 목표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양산형 슈퍼카의 최고 스피드 공인기록은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Bugatti Veyron Super Sport)가 지니고 있다. 1200마력의 출력에 제로백 2.2초의 놀라운 힘과 순발력을 지닌 베이론 슈퍼 스포츠는 2010년 두 차례의 기네스 공인 주행에서 268mph(431㎞/h)를 돌파해 ‘가장 빠른 슈퍼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네메시스의 최고속도가 270mph를 넘어 300mph에 육박할 것이라는 트라이온 측의 설명대로라면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왕좌도 위태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트라이온이 과연 이러한 성능의 슈퍼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트라이온슈퍼카가 기술력을 아직 검증받지 못한 신생 업체이기 때문이다.
트라이온슈퍼카는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설립된 자동차회사다. 첫 모델 격인 네메시스는 트라이온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치 패터슨(Rich Patterson)의 작품이다. 그는 자동차산업에 29년간 몸담은 후 트라이온슈퍼카를 설립함으로써 오랜 꿈을 실현한 인물로 알려진다. 이전에 크라이슬러에서 일했고, 가장 최근에는 텔사의 전기자동차 모델 S의 인테리어를 설계하기도 했다고 한다.
트라이온 측에 따르면 네메시스의 차체와 차대(섀시)는 인코넬(니켈 크롬 철 등의 합금) 성분이 함유된 경량 카본섬유 혼합물로 제작된다. 가벼운 몸집에 최대 2000마력의 강력한 엔진의 힘이 더해져 놀라운 스피드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라이온슈퍼카는 양산을 위한 프로토타입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뒤집어 보면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양산형 슈퍼카의 최고 스피드 공인기록을 보유한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
최고속도에 대한 도전에서 트라이온 네메시스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슈퍼카는 영국 키팅슈퍼카(Keating Supercars)의 ‘키팅 볼트(Bolt)’다. 지난해 9월 키팅 측이 밝힌 키팅 볼트의 성능은 말 그대로 괴물에 가깝다. 최고속도가 무려 340mph(약 547㎞/h)에 도달했고, 제로백도 2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격도 75만 파운드(약 13억 원)에 이른다.
키팅슈퍼카는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인 앤서니 키팅(Anthony Keating)이 ‘세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2006년 설립한 슈퍼카 제작회사. 키팅 볼트에서 ‘볼트’는 번개라는 의미다. 그만큼 빠른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키팅 측에 따르면 키팅 볼트의 차대는 알루미늄 프레임에 카본 패널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차체는 탄소섬유와 케블러(Kevlar·타이어나 다른 고무 제품의 강도를 높이는 데 쓰이는 인조 물질)로 구성돼 있다. 그 결과 차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공차 중량이 990㎏에 불과하다. 여기에 LS7 7.0리터짜리 트윈터보 슈퍼 차지 V8 엔진이 탑재돼 평상 주행 때 640BHP(제동마력,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잰 마력), 트윈터보 차지드 땐 1000BHP에서 최대 2500BHP의 놀라운 괴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최고속도가 340mph라는 키팅슈퍼카의 주장대로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는 바로 키팅 볼트다. 하지만 이 역시 공인받지 못한 기록이다. 지금까지 비공식 테스트에서 최고의 속도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 슈퍼카는 스웨덴의 슈퍼카 제작회사 코닉세그가 만든 ‘One:1’이다. 코닉세그 측은 ‘One:1’이 280mph(시속 450㎞)를 돌파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만약 키팅 볼트가 시속 340마일이 아니라 시속 300마일의 벽만 돌파해도 가장 빠른 자동차로 등극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키팅슈퍼카는 지난해 키팅 볼트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시험주행을 해 먼저 300mph의 벽을 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키팅 볼트의 장담과는 달리 시험주행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키팅 볼트가 새로운 속도의 역사를 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키팅 측의 저력 때문이다. 키팅슈퍼카는 2010년 최고속도 418㎞/h의 키팅 KTR을 내놓아 한동안 ‘가장 빠른 슈퍼카’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키팅슈퍼카의 웹사이트에선 키팅 볼트가 도달하려는 최고속도를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소리의 속도인 마하(mach)를 활용해 0.5마하라고 표기를 한 것. 1마하가 약 1224㎞/h이니 0.5마하는 380mph, 즉 610㎞/h가 넘는 속도다. 일단 키팅 측으로선 공식적으로 300mph를 넘는 게 급선무이긴 하지만 꿈만큼은 훨씬 더 높고 원대한 셈이다.
이정수 프리랜서